[원불교신문=안세명] “서늘한 바람 불어오니 만물이 그 본체를 드러낸다.”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 했던가. 벽암록의 활구처럼 좌산 이광정 상사(左山 李廣淨 上師·84)는 무상(無相)의 촌로(村老)가 되어 후진들을 반가이 맞이했다. 구룡마을 상사원은 ‘정훈도량(貞訓道場)’이라 부른다. 이리교당 정타원 송정련 대호법과 훈산 윤신택 대호법이 희사한 이곳은 소나무가 봄기운을 거두어 서있듯 따스한 스승의 훈풍에 마음이 절로 살아난다. “안으로 안으로 하나(眞我實現), 밖으로 밖으로 하나(大我實現), 영겁 영겁토록 하나(永劫我實現), 하나도 없고 없는 하나(三昧我實現).” 오직 원력 하나로 똘똘 뭉쳐 진리와 법과 회상과 스승과 하나 된 좌산상사와 진행한 대담전반을 요약한다.

일생을 평화·통일운동에 전력하셨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원불교가 통일과 평화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 미래세대에 원불교의 역할을 자부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교단 내 ‘통일문제연구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그러한 정보와 학습이 축적될 때 실천강령이 분명해지며 사회적 인증을 받게 된다.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주세교단이라고 말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문제에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

초기교서를 공부하면, 대종사께서 세상을 좋게 하시고자 사은사요를 밝히셨고, 일체생령들을 모두 구제하고자 삼학팔조를 공부시켰다. 그 의지가 정말 대단하셨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의 난제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주세교단이길 포기하는 것이다. 통일문제는 우리가 죽기로써 해결해 내야 한다. 이를 위해 역대 정부에게 북한 핵 문제 선결도 중요하지만, 남북이 상호존중과 협력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더 근원적임을 여러 차례 전달했다. 선 통일, 후 핵 포기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그 구체적 안으로 ‘1국 2체제 2내각’을 제시했다. 물론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당분간은 연방제 성격으로 가야하겠지만 현 체제를 유지하는 가운데 남북합의에 의해 평화주의자를 국가 원수로 내세우는 방식도 절충안이 될 수 있다. 내국인, 외국인이라도 상관없다. 시간이 흐르면 국방권까지 맡길 때 상호 교류는 물론 서로의 불신을 녹여낼 수 있다. 

앞으로 60대 이상은 남북을 자유롭게 오고갈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남북교류가 자유로워지면 반공과 통일교육이 끝나는 것이다. 남한의 체제와 경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면 월북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차원 높은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가 들어서 북한을 잘 살게 해야 한다. 북한이 중국의 도움만 받게 되면 중국의 자치구역 중 하나로 주저앉게 된다. 세계경제기구에서도 한반도가 평화통일이 되면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 했다. 미국 다음으로 경제대국이 될 것이다. 이럴 때 유라시아 대륙은 우리의 경제영토로 확장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는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는 시대다.

독일은 사요가 그대로 실천되고 있다. 국민들 전부가 자력생활을 하고, 제도적으로 돈 없어서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다. 대학까지 국가가 책임지니 타자녀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유럽 경제를 독일이 지탱하고 있다. 독일은 분야 분야별로 지자본위가 되어 있다. 합리주의가 정착돼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과거 잘못을 기회 닿는 대로 참회한다. 그러한 사요정신이 있기에 통일도 해 낸 것이다. 우리나라에 원불교가 있으면서도 못 해내는 것이 미안하다. 

국회에 갔을 때 보수와 진보에 대해 질문을 하길래 이 땅에 보수와 진보가 함께 있다는 것이 매우 희망적이다고 답했다. 역사를 살펴보면, 보수 말을 안 들었다가 곤욕을 치를 때도 있었고, 진보 말을 안 들었다가 고통을 겪은 일도 있었다. 현실 상황에 어떤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지혜롭게 바라봐야 한다. 그러니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공존하며 각각 필요한 경우 일을 하면 발전할 것 아닌가.


원불교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과 대사회적 과제가 있다면
한국의 새마을운동이 유네스코에 등록됐다. 새마을운동은 그 발상이 원불교다. 이미 대종사께서 영광에서부터 금주단연과 근검저축으로 저축조합운동을 창설했으며, 미신타파와 허례허식을 폐지한 예법혁신과 문맹퇴치, 갯벌을 막아 소득증대와 영농의 선진화를 이끌었다. 

새마을운동의 대부인 농산 김준 전 새마을연수원 원장(명예대호법)은 영광 군남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이러한 교단의 역사를 목격하고 전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대산종사께 새마음·새생활운동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 이를 새마을운동 강령에 담아 안으로는 연수원을 통해 정신운동으로, 밖으로 새생활운동을 전국에 펼치게 된 것이다. 또한 청소년 훈련도 완도청소년수련원이 효시가 돼 전국에 확산됐으며, 대안교육도 영산성지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우리사회 제도권에서 이탈한 청소년 교육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 잊혀져가는 전통문화도 국내외 민속잔치를 원불교가 지속적으로 펼침으로써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모스크바 한민족 민족큰잔치는 올해 1만명이 왔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마음공부운동을 더욱 주도적으로 펼쳐가야 한다.

교법정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재가출가교도들의 사명이 중요할 것 같다
우리가 교리공부를 깊이 하면 할수록, 이 세상을 좋게 하려면 사은사요 아니면 될 수가 없다. 사람 하나 하나를 불보살 만드려면 삼학팔조 아니고서는 될 수 없다. 결국 상시·정기훈련을 통해야 하며, 단 조직과 단 관리로 주도면밀하고 물샐 틈 없이 공부해야 한다. 

세상이 좋아지려면 먼저 우리가 좋아져야 하는데, 사은사요 삼학팔조 공부를 빼면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의 자부심이 충만해야 한다. 우리가 희열이 넘칠 때 세상을 그렇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희미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각자 자신을 위해서나, 세상을 위해서나 교법정신으로 살면 자신도 행복하고 세상도 좋다. 만약 교법에서 반하는 모습이 있으면 자신도 불행해 지고, 세상도 안 좋아진다. 그러니 우리의 사명이 얼마나 무거운가. 

정신개벽 하는 것이 우리 사명이자 서원이다. 대종사께서 우리를 정신개벽 시키려고 작정 하고 내주신 것이 사은사요 삼학팔조다. 이 교법정신만 잘 지키고 있으면, 세상 인심이 우리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법정신을 되살리는 문제는 말로만 될 수 없다. 좋은 말은 쏟아져 나온다. 실지가 중요한 것이다. 계행의 청정과 처신하는 모든 면에서 그 실지를 보여줘야 한다. 아침마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해놓고 조그마한 경계에도 원망을 한다면 그런 정신수준으로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건지겠는가. 교단 안에서부터 그런 아름다운 모습이 발현되면, 우리가 세상의 선망의 대상이 될 것이다. 

언론사에서 그런 분위기를 더 주도해 가야 한다. 종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사은사요 삼학팔조를 쉽고 원만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퀴즈 문제 하나에도 교리를 바탕으로 내야한다. <원불교신문>의 마음공부 섹션도 계속 꾸준히 해야 한다. 그렇게 길을 안내해 줘야 한다. 한번 가지고는 안된다. 그럴 때 독자들이 감동을 받는다.


교화를 위한 염원을 듣고싶다
먼저 출가교역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해외 교무 한 사람이 교화가 어렵다고 말을 해서, 어렵다 생각 말고, 은(恩)을 심어라. 행동으로 물건으로 법문으로 은혜를 심는 역량이 터져야 교화가 확산된다. 은혜가 미치면 무쇠도 녹는다. 더 확실히 교화 안 되는 원인중 하나는 교역자들이 미디어와 핸드폰에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데 있다. 교화를 위해 연마하고 계획하는 데 정성을 다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 공력을 교화에 들여야 한다. <소서(素書)>에 ‘비막비어정산(悲莫悲於精散)’이란 말이 있다. 슬픈 것 중에 슬픈 것은 수도자가 정력을 소모하는 것이다. 우리의 실력과 정성이 필요 없는 곳으로 낭비되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 그 힘을 교화와 공부와 수행에 쏟아 부어야 한다. 취미생활 또한 교화에 관련된 일을 함으로써 마장이 되지 않도록 하자.

내가 교화현장에 있을 때 가장 공들인 것이 설교였다. 설교는 해도 해도 만족할 수가 없다. 연습을 하고 또 하고 연마하고 또 연마해도 부족한 것이 설교다. 준비되지 않은 설교가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수요일이 되면 제목과 법문을 미리 정하고, 일주일 내내 그것 가지고 실행해 보고, 궁글려 보고, 관련된 것을 메모하고, 토요일에 정리하면, 그것이 설교가 됐다.

재가교도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운봉·익산·종로에서 11년간 교당 근무를 했다. 재가교도들이 몰이를 해 줘야 교화가 되더라. 교무들은 피 교화자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비 교도들을 접촉해서 확산해가는 것이 교화인데, 결국 재가들이 그 몫을 해줘야 한다. 재가교도들의 마음속에 교화의식이 살아 있어야 교화가 살아난다. 정관계를 비롯 많은 분들이 이곳 상사원에 찾아와 교법을 이해하고 불문에 귀의하게 되는 것도 인연 있는 재가교도들이 그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재가들이 살아나야 우리 교화가 될 것이다. 재가들이 몰고 와야 된다. 

대종사는 정신개벽을 하려고 얼마나 작정을 하셨는지 모른다. 대종사께서 이 교법을 마련하실 때, 그때 상황을 살펴보면 주세성자께서 원력을 뭉치고 이 일을 반드시 해내려고 표어까지 제정하면서 힘을 다하셨다. 세상이 좋아지려면 오직 교법대로 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다. 사상의학에서 지혜를 구한다면
사은께서 주신 만사만리의 근본인 몸 관리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신체에는 척추관리가 중요하니 운동과 요가를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 먹고 약 쓰는 것은 사상(四象)으로 하면 좋겠다. 다 실험을 거친 것이니 자신의 체질에 맞게 살아야 한다. 특히 음식은 사상에 맡게 먹는 것이 기본이다. 내과는 사상으로 치료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 대산상사께서 처음 종법사위에 오르실 때 목에서 음식이 안 넘어가실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씹고 또 씹으시고 또 씹으시며 겨우 겨우 공들여 넘기셨다. 폐가 안 좋으셔서 법당의 향냄새도 어려워하셨다. 내가 사상의학을 알고 가서 도움을 드렸다. 나중에 계룡산도 매일 다니실 정도로 건강해지셨다.

나는 해외 방문 시 사상의학을 강의했고,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에서도 영어로 번역해 지도할 예정이다. 그동안 1300명 정도 교도들의 체질을 봤다. 과거 팔만대장경 오거 시서를 똘똘 뭉쳐서 <정전>으로 밝혀주신 것처럼 동양의학의 경험학을 축약해서 <사상요람>에 압축돼 있다. 우리는 한 손에는 <정전>, 한 손에는 <사상요람>을 가지고 공부하면 좋겠다.


교단 언론기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당부하고 싶은 자세나 바람이 있다면
<원불교신문> 뿐만 아니라, 재가출가, 동지상호간을 막론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이 사는데 잘잘못이 왜 없겠는가. 잘못은 서로 채우고, 되게 하고, 받들기도 하며 나가야한다. 그렇다고 충고가 없어서는 안된다. 충고는 우리를 바르게 키워주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시비하는 사람을 원수같이 생각하면 공부 못하는 사람이라 했다. 나를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알라고 했다. 충고가 없는 교단은 죽은 교단이다. 칭찬과 충고가 교단의 거름이 된다. 언론도 아닌 것은 모른척하고 좋은 것만 드러내는 것도 맞지 않다. 또한 안 좋은 것만 드러내 교도들 신심 떨어지는 것도 맞지 않다. 중도를 잘 잡아 언론 기능이 살아나도록 노력을 기울여 달라.

정리 류현진 기자 rhj@wonnews.co.kr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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