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소태산 대종사께서 가르쳐주신 마음을 사용하는 방법은 각자의 근기와 경우에 따라 각각 그에 맞는 법으로 마음 기틀을 계발하는 공부입니다.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내 마음으로 공부하고 일일이 문답하고 지도인에게 감정과 해오를 얻으며, 내 삶을 산 경전과 큰 경전으로 삼는 공부이기에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공부는 맞춤복이라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연말만 되면 참회 기도를 하는데 1년 내내 죄만 짓고 산 사람처럼 취급받는 것 같고, 없던 죄책감마저 밀려옵니다. 

▶지도인: 참회(懺悔)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정전> ‘참회문’에 참회의 개념과 원리, 방법 등 막연한 참회가 아닌 용심법 참회로 알려주셨습니다. 참회 기도를 하더라도 이 가르침을 모른다면 오히려 죄보다 더 무서운 죄책감만 강해질 수 있습니다. 참회를 왜 해야 할까요? “음양 상승의 도를 따라 선행자는 후일에 상생(相生)의 과보를 받고 악행자는 후일에 상극(相克)의 과보를 받는 것이 호리도 틀림이 없으되, 영원히 참회 개과하는 사람은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정전> 참회문). 음은 양으로, 양은 음으로 돌고 도는 이치처럼 인(因)은 과(果)로, 과는 인으로 변합니다. 원래는 ‘인이다, 과다’하는 분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묘하게 ‘인이다, 과다’하는 분별이 있어지는 거죠. 이 이치를 따라서 선을 행한 사람은 상생의 과보를 받고 악을 행한 사람은 상극의 과보를 받는 것이 조금도 틀림이 없습니다. ○○공부인은 선행자(善行者)인가요? 악행자(惡行者)인가요?

▷공부인: 솔직히 저는 남에게 해될 일도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산다고 생각해요. 

▶지도인: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사람의 성품이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대종경> 성리품 2장). ○○공부인도 원래 선행자도 악행자도 아니건만 경계를 따라 선행자일 때도 있고 악행자일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선행의 결과로 후일에 상생의 과보를 받기도 하고, 악행의 결과로 상극의 과보를 받기도 하는 거죠.

▷공부인: 살다 보면 상극의 상황이나 인연들을 만날 때가 있어서 제가 선행자라고만 고집할 수는 없겠어요.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하려면 영원히 참회 개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영원히 참회 개과한다는 건 뭔가요?

▶지도인: 먼저 순간과 영원이 둘 아닌 줄 아는 것이 참으로 영원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경계를 만나는 순간마다 공부할 때가 돌아온 것을 염두에 잊지 않고 항상 끌리고 안 끌리는 대중만 잡아가는 것이 영원히 참회 개과하는 것입니다. 대종사께서는 상극의 업력만이 아니라 상생의 업력도 벗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참회 개과한다 해도 이미 지은 선업과 악업으로 있어지는 상생, 상극의 과보는 피할 수 없습니다. 다만 원래는 ‘상생, 상극’, ‘죄, 복’이라는 분별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상생, 상극’, ‘죄, 복’의 분별이 나타나는 것이니, 죄와 복, 상생과 상극의 과보를 다 받아들이고 공부하는 것이 능히 상생 상극의 업력을 벗어나서 죄복을 자유로 하는 것입니다. 

/교화훈련부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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