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제1부 새 회상, 제2부 찬송, 제3부 교단에 이어 제4부 법회가 등장한다. 새 회상이 열리는 의미를 새기고, 새 회상을 열도록 한 대상에 대한 찬송과 오늘날의 교단을 노래하고 나면, 원불교의 본격적인 교화와 개인과 시대변화의 방법으로서 법회가 나온다.

산회가를 시작으로 전개되는 법회부 <성가>에는 원불교가 법회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어떤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내고자 하는지가 나온다고 볼 수있다. 특히, 법회부에 등장하는 결제가와 해제가는 원불교의 법회가 단순히 정례적인 종교 예회가 아닌 훈련으로서의 의미가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훈련이기 때문에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것이고, 또 꾸준히 훈련을 해야만 변화가 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원불교 4축에 대한 성가들이 등장을 하는데, 원불교 법회는 기존의 종교가 내세운 예배 또는 법회의 성격 뿐만 아니라 경축절의 의미도 포함해서 법회로 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법회부 첫곡으로 ‘거룩한 회상에’, 산회가의 등장은 흐름상으로 보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산회가는 사람들이 모임을 파하고 헤어질때 부르기 위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내 교당에서 이루어지는 법회가 무엇을 목적하는 지를 볼 수 있는데 법회를 다녀가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의미가 시작부분에서 나온것으로 보면 좋겠다.

30장, ‘교당의 노래’와 이어지는 느낌이 있는데 31장은 교당에서 거행되는 원불교 법회는 다녀가면 행복해야만 할 것 같은 가사이다. 교당의 법회를 통해 법문을 듣고 나면 생활에서 광채를 낼 만한 마음의 힘을 얻어가는 충전소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돌아오는 법회 날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해야한다. 

원불교 2세기를 맞아 교화에 대해 많은 고민이 있을 것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공부인이 늘 사은의 은혜속에서 살고 있음을 법회를 통해서 알아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믿음이 굳어질 수 있는 법회, 교당이 가득하면 좋겠다. 

/영산선학대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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