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은 물질문명을 배경으로 하는, 물질문명에 바탕한 정신문명의 개화를 추구한다. 즉 물질문명을 선용하는 정신문명이라 달리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에는 물질과 정신이 연동되어 있다.

물질은 일반적으론 의식의 바깥에 존재하는 구체적 형태를 가지고 있는 육체나 물체 등으로, 인간의 의식과는 별개로 외부에 존재하는 비(非)의식적인 대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소태산의 깨달음에 있어 물질은 정신과 둘이 아닌 동일체이면서 또한 정신의 선상에 있는, 정신의 대면으로써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무생물만 물질이 아니라 생명도 물질이며 인간의 문명도 다 물질인 것이다.

즉 물질은 정신의 대상이요, 인연이요, 경계로써 온갖 만물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에 인연되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의 대상은 다 물질로, 유형(有形)의 색성향미촉의 경계도 물질이고, 무형(無形)의 법경(法境)도 물질인 것이다. 가치화되고 이념화된 이데올로기·사상·신념·법률·도덕규범·풍습 등의 법경도 물질이며 교법도 물질이며 정치·경제의 체제와 권력도 물질이다. 또한 감각된 것도 감정화된 것도 생각된 것도 물질이며, 언어도 고도화된 물질이며 온갖 정보인 데이터도 물질이다. 이처럼 일체의 유형무형의 존재는 물질이다.

<대종경> 교의품 29장·30장을 통해서 물질의 용례를 살펴보면 사농공상에 대한 학식과 기술, 지식과 정보, 생활기구, 재주와 박람박식, 환경, 바깥 문명, 모든 문명, 천만 경계 등으로, 물질은 벌려진 바깥 문명이요 주어진 천만 경계이다. 물질은 심신 간의 모든 환경인 여건, 조건, 배경으로 주어지는 것은 다 물질인 것이다.

다만 물질의 세력은 없앨 수 있는 멸절(滅絶)의 대상이 아니라 항복시켜 선용(善用)하는 대상이다. 그러므로 ‘개교의 동기’에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라고 한 것이다. 선용은 정신의 세력이 주도권을 가지고 물질의 세력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질 경계에 대한 충동과 욕동이 잠재되어 있다. 정신의 세력이 약해지면 언제든지 물질의 세력에 끌려 물질의 지배를 받는 노예생활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물질은 정신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연동된 세력이다.

‘개교의 동기’는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로 시작한다. 과학문명의 출현은 일대전환의 분기점으로, 바로 이 지점이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겠다는 소태산의 출현 배경이다. (<원불교교사> 서설) 결국 과학이 결부된 물질문명의 시대에 물질의 세력에 끌려다닐 것이 아니라 이를 항복 받아 선용하기 위해서, 정신의 세력을 확장해야 하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일원상 자리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일원상이 드러날 때 정신의 세력이 확장되어 물질의 세력을 항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할 때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병진되는 새 시대가 되는 것이다.

/나주교당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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