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어느덧 가을이 깊어 대지가 색색이 물들고 산들이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 왔다. 초록일색이던 산천이 노랗게 혹은 붉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자면 참으로 장관이구나 싶다. 산정에서 기웃기웃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하루에 50리씩 느긋하게 내려오지만, 하늘이 푸른 줄 모르고 세상사에 휘둘리던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물든 나뭇잎 하나를 보고 가을이 온 줄을 알게 된다.

대종사는 원상의 진리를 각(覺)하면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되는 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전>일원상 법어). 수학 시절, 한 원로교무가 학생이었던 우리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일원상 법어의 이야기를 했다. 퇴임하고 여기저기 아프면서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쉬움이 들었는데,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이 된다면 나의 병은 천지의 가을과 같은 선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가을이 되어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육신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것이니 달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때부터 천지의 운행이 원불교의 공부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대종사도 궁촌벽지에서 과학적 지식이 없이 세상과 인간사를 관찰하며 깨달음을 얻지 않았는가. 사계가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의문을 품었고, 그 답을 어떻게 표현했을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불운하고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자연현상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학교에서 모두 가르쳐주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단풍을 보며 바로 생로병사와 연결되는 의문을 품지는 못했다. 그래도 단풍이 왜 생기는가에 대해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가을이 되어 세상이 울긋불긋하게 변화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 색은 원래 나뭇잎이 가지고 있는 색이다. 안토시아닌이나 카로틴, 크산토필, 타닌과 같은 색소 등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광합성을 위한 엽록체를 활성화했기 때문에 그 모든 색이 모습을 감춘 채 푸른색을 띠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추운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엽록체를 내려놓는다. 겨울 동안 말라 죽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여름 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빛깔을 맘껏 뽐내고, 곧 뿌리를 덮기 위해 잎마저 내려놓는다. 나무들은 여름내 그렇게도 많이 틔웠던 푸른 잎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내려놓는다. 그것이 천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단풍이 초록을 내려놓는 모습은 숭고한 멋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가을이 되면 그 숭고한 모습을 찾기 위해 산천을 돌아다니며 내려놓음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집착과 상을 내려놓은 성인의 아름다움을 좆아 이 공부를 하듯이 말이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12월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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