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식량농업기구 프로젝트 참여
기아 없는 세상이 우리의 목표

임윤슬 교도

[원불교신문=임윤슬 교도]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무릎까지 오는 털 부츠를 신고 롱패딩으로 몸을 둘둘 감싼채 출근 했던 나는 어느새 적도의 동티모르에 와 있었다. 지난해 졸업 후 몽골 UN 세계식량농업기구에서 6개월간 근무를 했다. 원불교에 지극하신 부모님은 항상 세계와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라고 말씀했고, 그러한 영향 때문이었는지 자연스레 국제 개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서른 즈음에 유엔에 입성해야지’라는 목표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고, 운 좋게 어린 나이에 유엔에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유엔에는 두 가지의 식량기구인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있다. 나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세계식량농업기구였다. 몽골은 극심한 기후변화 때문에 골치를 겪고 있었다. 드넓은 초원과 대지는 사막화 돼가고 있었고, 영하 40의 극한의 날씨에도 눈은 오지 않아 가축들은 말라갔으며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굶어갔다. 유엔기구는 전 세계 전문가들을 모아 몽골을 돕고 있었다. 초보 인턴이었던 나는 그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도왔다.

동티모르의 영양실조 수준은 몽골과 차원이 달랐다. 길을 지나다녀도 팔이 앙상한 아이들이 가득했고 생활환경도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고 쓰레기를 파서 음식을 찾는 사람들도 있으며, 피부색이 하얀 나를 빤히 보거나 따라오기 일쑤였다. 이곳에서 나는 학생들의 영양실조 지수를 줄이기 위한 학교 급식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고, 여러 정부 사람들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동티모르 정부가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방향에 일조하고 있다. 사실 몽골에서 다시 동티모르로 올 때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고, 그 걱정이 심지어 비난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왜 굳이 그런 나라에 가야 하니, 네가 꼭 해야 하는 일이니’ 등 수많은 질문들이 나를 덮쳐왔다. 

나 역시도 가끔은 그러한 물음들이 떠오른다. 몽골에서 극한의 추위로 고생하면서도 그랬고, 이곳 동티모르에 살아봐도 그렇다. 정전은 매일같이 반복되고, 물에 석회가 많아 몸을 생수로 헹궈야 하며, 음식 역시도 한 달에 한두 번은 탈이 났다. 정말 한국 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이라고 이런 시기가 없었을까. 나라가 불안정하고 사람들은 배고프고 위생도 삶의 질도 엉망이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전쟁 직후 한국의 모습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그때도 누군가는 우리나라에 왔을 것이고 이 땅에서 희망을 심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희망을 품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들도 우리와 같이 될 수 있으며, 선진 교육을 받은 운 좋았던 내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여정을 시작하려 한다. 시베리아 극한의 추위에서 적도의 극한 더위로 말이다.

<대종경> 변의품 27장에서 대종사는 말한다. “같은 한 물건이지마는 한 사람에게만 주면 그 한 사람이 즐겨 하고 갚을 것이요, 또는 한 동리나 한 나라에 주면 그 동리나 나라에서 즐겨 하고 갚을 것이요, 국한 없는 세계 사업에 주고 보면 전 세계에서 즐겨 하고 갚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같은 것을 가지고도 국한 있게 쓴 공덕과 국한 없이 쓴 공덕을 비교한다면 국한 없이 쓴 공덕이 국한 있게 쓴 공덕보다 한량 없이 더 크나니라.” 

유엔의 식량기구는 ‘Zero Hunger’를 목표하고 있다. 기아가 하나도 없는 세상이 우리의 목표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배고프지 않게, 나는 오늘도 열심히 동티모르에서 희망을 심는다.

/청학교당

[2019년 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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