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소태산 대종사의 대각은 ‘정신개벽의 대각’이라 해도 타당할 것이다. 물질문명을 전제한 정신문명의 개벽이기 때문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일원상의 진리를 대원정각(大圓正覺)하고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대종경> 서품 4장)는 개교표어를 제창한다. 이처럼 일원상의 대각인 대원정각의 대사회적 표현이 정신개벽이기에 일원상의 깨달음을 정신개벽이라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신개벽은 일원상의 발현인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개벽(開闢)은 한 사람의 개벽만이 아니라 모두의 개벽을 지향하는 열고 여는 의지이다. 이를 ‘개교의 동기’에서는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라고 주창한다. 즉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여 물질의 세력을 잘 운용하는 힘으로, 본래 정신과 물질은 둘이 아닌 동일체이나 운용할 때에는 정신이 체가 되고 물질이 용이 되는 것(<정산종사법어> 경의편 40장)이다.

‘정신수양의 요지’에서 “정신이라 함은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하여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를 이름한다”고 밝히고 있다. 정신은 마음 차원에서 원래 두렷하고 고요한 일원상 자리가 드러나는 경지로, 생멸하는 마음자체가 없는 것이 아니라 분별·주착하는 실체의식인 분별성과 주착심이 없는 경지이다. 분별하여 고착되는 습성(習性)과 착심(着心)에 따라 마음이 두렷하고 고요치 못하게 되어 경계에 끌려 다니는 격이다. 

또한 정산종사는 “성품은 본연의 체요, 성품에서 정신이 나타나나니, 정신은 성품과 대동하나 영령한 감이 있는 것이며, 정신에서 분별이 나타날 때가 마음이요, 마음에서 뜻이 나타나나니, 뜻이 곧 마음이 동하여 가는 곳이니라”(<정산종사법어> 원리편 12장) 밝혀주신다.

이 ‘성품-정신-마음-뜻’의 관계에서 성품은 마음의 체(體)라면 마음은 성품의 용(用)으로, 정신은 청정한 성품을 포괄하면서도 신령한 감이 있어 분별과 의지로 전개되는 자리다. 즉 정신은 성품에 바탕해 마음과 뜻으로 작용하는 시동(始動)으로, 성품과 마음과 뜻을 통괄하는 자리이다. 비유하면 청정한 공기가 호흡을 통해 몸 안 혈관을 타고 돈다할 때, 정신은 혈액 속 공기격인 심(心)이면서 청정한 공기자체인 성(性)을 내포하는 상태이다. 정신은 이처럼 ‘근본심인 성품’과 ‘분별심인 마음’을 통괄하는 경지로, 근본심을 여의지도 않으면서 또한 분별심을 떠나지도 않는 포괄처다. 

그러므로 정신은 깨어있는 경지요 정신 차린 상태로, 유념·주의심·공부심·챙기는 마음 등으로 변주된다. 결국 정신개벽은 일원상의 발현인 정신을 차리고 챙기는 마음공부로, ‘개교의 동기’로 보면 물질문명의 상황과 경계 속에서 일원상을 발현해 정신의 세력을 확장하고 물질의 세력을 항복 받아 선용하며,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을 병진하는 것이다. 일원상에 바탕해 물질을 잘 선용하고 구하는 정신이요 사용하는 정신(<정산종사법어> 경의편 2장)이다.

/나주교당

[2019년 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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