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 교무

[원불교신문=최정윤 교무] 며칠 전 우연히 책장 안쪽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준 <소유냐 존재냐>책과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됐다. 누구나 한 번쯤 정말 진지하게 인간의 두 가지 기본 성향인 이기심과 이타심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독일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저술한 이 책을 통해 나는 과연 자기 소유에 집착하는 ‘소유적 인간’인가? 아니면 살아있는 존재가치를 느끼는 ‘존재적 인간’인가에 대한 고민에 빠졌던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그는 모든 인간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소유할 수 있는 대상 자체가 영원하지 못할뿐더러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대상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과를 소유하는 바로 그 순간은 인간에게 잠시나마 행복을 가져다주는 듯한데 이는 인간의 원초적 영역인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런 새로움의 영역을 소유로 채우는 것은 임시방편이며 잠시의 행복 뒤에 더 커다란 소유를 원하게 되고 그러한 반복이 결국 “무엇인가 소유하지 않는 삶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은 무엇인가를 더 많이 소유하려는데 대부분 에너지를 투자한다.

어느 날 소태산 대종사는 “허공 법계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이전 증명 낸 사람이 있느냐?”고 제자들에게 묻는다. 누가 과연 허공법계를 자기소유로 이전 증명 내려고 생각할까?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저 무형한 허공법계를 자기 것으로 이전 증명 낼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대종사는 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까? 그 질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는 곧 생활 속에서 진리의 본체 즉 일원의 진리를 자기 소유로 만들어서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활용하고 있느냐는 스승의 간곡한 물음일 것이다.

이어서 대종사는 “삼세의 모든 불보살은 형상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허공 법계를 다 자기 소유로 내는 데에 공을 들였으므로 형상 있는 천지 만물도 자기의 소유로 수용하나, 반대로 범부와 중생들은 형상 있는 것만을 자기 소유로 내려고 탐착하므로 그것이 영구히 제 소유가 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까운 세월만 허송하게 된다”고 깨우쳤다.

정산종사는 세상만사에 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범부는 눈앞의 한 수밖에 보지 못하고, 성인은 몇십 수 몇백 수 앞을 능히 보므로 범부는 항상 목전의 이익과 금생의 안락만을 위해 무수한 죄고를 쌓지마는 성인은 항시 영원한 혜복을 위해 현재의 작은 복락을 희생하고 안빈낙도하면서 마음공부와 공도 사업에 계속 노력하는 차이가 있음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재미 삼아 하는 우리는 형상 없는 허공 법계를 소유하는 데에 더욱 공을 들여서 범부가 아닌 성인의 삶으로 더 멋진 삶을 개척해 나가야겠다.

/원광보건대학

[2019년 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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