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준 교무

[원불교신문=서양준 교무] 학교에서는 매달 한 번씩 교직원 법회를 진행한다. 아무리 교립학교라지만 종교의식인 법회를 진행하는 입장은 조금 조심스럽다. 법회에 대한 강요가 느껴지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참석을 권하고, 법회 내용도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하려다 보면 많은 신경이 쓰이곤 한다. 자칫 원불교에 매몰되어 교도만이 이해하는 언어를 쓰지는 않는지,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지는 않는지 살피며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공감대를 나누다 보니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설교에서 학생에 대한 이야기나 학교생활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를 예화로 들다보면 재미있게 들어주는 모습에 자신감도 얻었다. 요령과 자신감이 조금 생기고 나니, 법회에서 교직원들과 종교적 체험을 나누고 싶어졌다. 그래서 어떤 체험을 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선(禪)법회였다. 그저 법회에 와서 설교만 듣고 가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관조하는 체험을 전해주고 싶었다. 함께 <정전> 좌선법을 봉독하고 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했다.

“선(禪)이라는 한자를 파자해보면 볼 시(示)에 하나 단(單)으로 나뉘듯, 천만가지로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아 보자”며 경종 소리에 마음을 실어 선을 시작했다. 선에 대한 간단한 원리만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에 임하는 자세와 진지한 태도는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 그리고 선법회를 끝내고 간단한 감상을 받았더니 의외로 반응도 좋았다. 그저 가볍게 참여하던 법회가 무엇인가를 느끼고 돌아가는 법회로 변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문서작업과 속 썩이는 아이들의 생각으로 뜨거운 머릿속을 잠깐 비워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선법회를 진행한 보람을 느끼게 했다.

법회가 끝난 뒤 한문 교사가 조용히 귀를 빌려 선(禪)자를 파자할 때 볼 시(示)가 아니라 보일 시(示)라고 정정해준다. 그러니 하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보이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게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 순간 속으로 아차 싶었다. 내가 준비를 제대로 못 한 것을 지적하는 내용인가 싶었는데, 그 교사가 한마디를 더 보탠다. 원래 세상은 복잡하고 좋고 나쁨이 나뉘어 있는데 그것을 큰 시각에서 하나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마음공부인 것 같다고, 그래서 법회가 가지는 의미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교당을 다니지 않는 그 교사의 작은 소감이 법회가 끝난 뒤에도 멎지 않는 울림처럼 남았다. 세상에 색성향미촉법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 인식의 전환이고 그것이 마음공부라고 생각해왔다. ‘법회를 통해 정성 들여온 작은 메시지가 드디어 사람들에게 닿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자 마음에 벅참이 스며든다. 나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하루다.

/원광여자중학교

[2019년 12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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