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무릇 부모는 나를 낳고 나를 기르는 사람을 이름이니 사람이 이 세상에 나면 자연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것으로 비로소 한 가정의 부모가 되는 것이라. 반면에 마음이 열리고 진리를 깨친 사람은 하늘과 땅을 부모로 삼나니, 왜 그런가? 세상에 벌여져서 다함이 없는 사물은 위로 하늘이 덮어주니 아버지로 삼고 아래로 땅이 온통 실어주니 어머니로 삼아서 가운데 머물러 삶을 누리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중국 송나라의 장재는 일찍이 <서명>에서 말하기를 ‘하늘을 아버지로 칭하고 땅을 어머니로 칭하니라’ 했으니 총섭하자면 천지는 이에 큰 부모이요 사람은 이에 작은 부모라 이르리라.

세상에 생명을 가진 존재는 부모가 없이 기생(起生)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부모라는 범주를 어디까지 볼 것이냐의 문제는 남을 수 있다. 가령 낳기만 한 부모, 기르기만 한 부모, 가르치기만 한 부모, 낳고 기르고 가르침을 다한 부모도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아드려야할 상황은 한 가지를 했던 두 가지를 했던 간에 부모는 부모로 받아드려야 한다.

첫째 천륜재자친(天倫在子親)이다. 즉 ‘천륜은 자식과 부모에게만 있다’는 의미이다. 혹 양자로 부모 자식이 됐다고 천륜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직 실제 낳은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형성되는 세상에 최고의 도덕률(道德律)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인본재부모(人本在父母)이다. 즉 ‘사람의 근본이 부모에게 있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땅에서 솟을 수 없다. 오직 부모를 통해서 이 몸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바로 부모가 사람의 근본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사부재시불(事佛在事親)이다. 즉 ‘부처(일원진리)를 섬김은 어버이를 섬김에 있다’는 의미이다. <대집경(大集經)>에 “세상에 만일 부처가 없으면 부모를 잘 섬길지니 부모를 섬기면 곧 이것이 부처를 섬김이니라(世若無佛 善事父母 事父母即是事佛也)”고 했다. 부처와 부모, 부모와 부처는 둘이 아닌 동급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인 <논어 이인(論語 里仁)>에서 공자는 “부모가 계시면 멀리 놀지 아니하고 떠날 경우에는 반드시 방소를 둘지라(父母在 不遠游 游必有方)”고 했다. 또한 <인욕경(忍辱經)>에 “선의 지극함은 효보다 더 큰 것이 없는 것이요 악의 지극함은 효도하지 않는 것이라(善之極莫大于孝 惡之極不孝也)”고 했다. 

송(頌)하기를
건곤비부모(乾坤丕父母)  하늘땅이 큰 부모이요
역시양친운(亦是兩親云)  또한 두 어버이를 이름이네
욕보기은혜(欲報其恩惠)  그 은혜를 갚고자 할진대
공부사업근(功夫事業勤)  공부와 사업에 부지런할지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1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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