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윤 교무

[원불교신문=최정윤 교무] 열네살 어린 여중생의 마음에 깊게 새겨진 인생의 좌우명은 바로 법명이었다.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최고의 삶을 살아가고자 쉼없이 정진하자는 서원. 산 부처로 이 한생 가장 멋지고 의미있게 살아보고자 당차게 시작했다. 지금까지 원불교인으로서 살아온 삶은 기특하고 대견스러웠으며, 당당하고 감사하다.

철부지 어린 나에게 나 자신만을 위하는 삶이 아닌 전 세계인류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소중한 길로 인도해준 스승님은 언제 어디서나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래서 40여 년간을 한결같이 새벽에 눈을 뜨면 늘 습관처럼 하는 주문이 있다. “사은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당하는 일마다 대하는 인연마다 꼭 도움되고 바탕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일생동안 각자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데 그 삶의 무게나 강도는 다 다를 것이다. 일반적으로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는 능력을 역경지수라고 하는데 이 역경지수의 높고 낮은 정도가 곧 그 사람 일생의 성과를 좌우한다고 한다. 

옛말에 ‘견딤이 쓰임을 결정한다’고 한다. 이 견디는 능력은 각자 타고나는 경우가 많은데 후천적으로 난관에 직면했을 때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다름아닌 경험·상상력·직관력·유연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평소 수양과 훈련으로 견디는 힘을 키워서 세상사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다각도로 단련해야만 역경지수가 높아진다고 한다. 그래서 일까 정호승 시인은 견딘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견디고 견디다가 구부러지고 뒤틀어진 나무처럼 되기 십상인데, 궁목수 가문에서는 그 나무의 성질을 잘 이용해 적재적소에 사용하려고 심하게 구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라도 바로 잡으려고 하지 않고 알맞은 용처에 썼다고 말한다. 이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견딤의 시간만큼 쓰임의 시간도 달라지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성인들은 현재의 작은 이익을 취하지 않고 오히려 해를 입어 가면서 영원 무궁한 참 이익을 얻으시나, 범부들은 작은 이익을 구하다가 죄를 범하여 도리어 해를 얻게 됨을 강조한다. 그리고 또 당부한다. 이 세상에 참된 이익은 오직 정의에 입각하고 대의에 맞아야 얻어 진다고 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가? 그리고 무엇에 기준하여 행동하는가?’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쓰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하루는 소태산 대종사가 선원에 모여 있는 대중들에게 범부들은 인간락에만 탐착하므로 그 낙이 오래가지 못함을 말했다. 그러나 불보살들은 천상락을 수용하므로 인간락도 아울러 받을 수 있으니 일생을 오직 불보살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일일시시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는 공부인으로 살아야 겠다.

/원광보건대학

[2019년 1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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