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

북한의 대표적 수재학교인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이 컴퓨터를 활용해 영어수업을 하고 있다. 북한은 2008년 9월 학기부터 컴퓨터와 영어과목을 소학교 3학년부터 정규과목으로 개설해 교육하기 시작했다.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인재양성 표방
“교육부문에서는 지식경제시대의 요구에 맞게 교육의 내용과 형식, 조건과 환경을 높은 수준에서 보장해나가야 한다.”

2012년 김정은체제 출범 첫 해인 2012년 1월1월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북한은 대대적인 교육개혁을 예고했다.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의 요구에 맞게 교육사업에서 혁명적 전환을 일으키자’는 취지였다. 다섯 달 뒤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 창전거리에 새로 건설된 창전소학교와 경상탁아소, 경상유치원 등을 시찰했다. 창전소학교는 20개의 교실과 각종 실험실, 컴퓨터실, 외국어학습실 등 현대적인 교육시설들이 갖춰 교육개혁의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시범학교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12년 9월2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남쪽의 국회에 해당) 제12기 6차회의를 열고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함에 대한 법령’을 전격적으로 채택했다. 김정은체제 출범 후 처음 열린 최고인민회의의 첫 번째 법령은 외부의 예상을 깨고 교육개혁을 단행하는 조치였다. 이에 따라 편제상 소학교과정이 4년에서 5년으로 1년 연장됐고, 중학교과정이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로 분리됐다. 이로써 북한의 교육학제는 유치원(2년)-소학교(5년)-초급중학교(3년)-고급중학교(3년)으로 변화됐다. 내용적으로도 교육방법과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이 이뤄졌다. 

교육개혁의 목표는 지식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한 과학기술분야 인재양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학생들에게 수학, 물리, 화학, 생물과 같은 기초과학분야의 일반기초지식을 교육하는데 기본을 두면서 컴퓨터기술교육, 외국어 교육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정보화와 국제화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지난해 개정된 북한 사회주의 헌법에는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40조), ‘국가는 교육을 통해 유능한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추구한다’(46조), ‘과학연구부문에 대한 국가적 투자를 증대한다’(50조)는 내용이 추가됐다. 


“과학기술은 나라의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기관차”
김정은정권이 서둘러 교육 개혁을 단행한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자녀교육에 관심이 높은 학부모의 지지를 끌어내는 ‘대중적 리더십’을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교육에 대한 요구가 비할 바 없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절에 흐트러진 교육체계를 전국적으로 정상화 하는 게 시급했다.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봉착하면서 학생들에게 교과서와 교복, 학용품 등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교원들에게 생활비 지급과 식량배급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불가피하게 북한은 일반교육보다는 수재교육에 힘을 쏟는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수재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도 어려워졌다. 당연히 대다수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졌고, 이를 완화하는 정책이 시급했다.  

둘째는 세계적 추세에 맞는 인력양성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경제건설에 필요한 인력자원(인재 양성) 문제를 하루속히 풀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북한에서는 ‘새세기 산업혁명’이라고 부름)시대의 요구에 맞게 정책을 이끌어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최근 “과학과 기술의 시대인 오늘날 국력경쟁은 곧 과학기술 경쟁”이라고 “현시기 모든 분야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가장 선차적이면서도 사활적인 문제”라며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강조한다. 

셋째는 청소년 학생들에게 실천(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산지식을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북한은 최근 노동당의 사상에 이어 현대 과학기술을 소유하는 것이 제2의 필수적인 실력이라고 강조한다. 

과학기술을 당의 사상 다음으로 높은 자리에 상정한 것이다. 과거 사상 중심의 교육, 교과서를 통한 딱딱한 이론 교육으로 학생들의 창의력이 떨어졌다는 반성에 기초한 방향전환이다. 이에 따라 북한은 각 도에 11개의 ‘정보기술고급중학교’를 신설했다. 이것은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일종의 ‘특성화고’ 개념을 확대·도입한 것으로, 정보화시대에 맞게 ‘산지식’을 갖춘 인재 양성과 함께 지역 인재 양성을 위한 조치로 볼 수 있다. 또한 황해제철연합기업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김정숙평양제사공장 등 20여개 기업에 금속공학 과목을 비롯한 전공 및 전공기초과목의 현장실습을 위한 실습거점도 마련됐다.

전반적으로 북한 교육정책의 방향전환은 정보화시대로의 변화, 국가발전전략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 북한 체제의 안정화 등의 정책 환경을 고려하면서 교육정책의 무게중심이 정치사상교육보다 과학기술교육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추동하는 기관차”라는 선전구호는 이를 상징한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일 뿐
새로운 교육정책 방향에 따라 북한은 다양한 고등교육 제도 개편을 단행했다. 우선 종합대학이 증설되고, 대학의 성격에 따라 학과 구조와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2012년 이전에 북한에서 종합대학은 세 개에 불과했으나, 단과대학 통합, 지역별 종합대학 신설 등의 방법으로 종합대학 증설이 추진되어 종합대학이 1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또한 대학 유형을 ‘연구형 인재 양성기관’과 ‘실천형 기술인재 양성기관’으로 구분해, 각각의 특성에 맞게 학과와 교육과정을 조정했다. 기존의 2~3년제 전문학교는 대학에 통합하거나 ‘실천형 기술인재 양성기관’인 직업기술대학으로 전환됐다. 

원격교육과 ICT 활용교육도 확대됐다. 2007년 김책공업종합대학 원격교육센터 설립을 기점으로 시작된 컴퓨터 네트워크 기반 원격교육(온라인강의)은 김정은시대 들어 ‘전민 과학기술 인재화’의 주요한 수단으로 격상되면서 더욱 확대됐다. 이에 따라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외국어대학 등 주요 대학에 원격교육대학이 설치되고, 주요 공장·기업소 근로자들이 원격으로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37개의 대학에 정보보안학과, 나노재료공학과, 로봇공학과 등 정보화와 첨단과학 분야의 학과 75개를 신설했고, 김책공업종합대학에 미래과학기술원을, 김일성종합대학에는 첨단기술개발원을 건립했다. 대학 내에 대규모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단지를 설치한 것이다. 

김정은시대 북한은 ‘세계적 추세’와 ‘실리’를 강조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공허한 구호일 뿐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미래의 인재 양성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 4월 노동당 제7기 3차 전원회의에서는 ‘경제건설 총력 집중’으로 국가전략노선 전환을 선언하면서 “과학으로 비약하고 교육으로 미래를 담보하자”는 구호를 제시했다. 여전히 북한의 교육과정에서 정치사상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만 변화의 흐름은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현재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19년 12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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