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마음을 알아차리고
본성을 떠나지 않는 실행공부로
정의롭고 은혜로운 마음공동체 구현

[원불교신문=장진수 교수] 과학혁명으로 인류는 이전에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고 있다. 반면에 정신의 세력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점점 그 지배적 위상을 잃고 있다. 우리를 보호해주었던 공동체도 해체되고 생태환경도 파괴되고 있다. 개개인은 주체성을 잃고 이기적 욕망과 물질에 끌려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찍이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를 제창하였다. 앞으로의 시대에는 과학과 도학, 물질과 정신이 잘 조화된 참 문명 세계가 펼쳐질 것을 전망했다. 이를 위해 ‘마음혁명’을 통한 ‘지금-여기’의 마음공부가 요청된다. 마음공부를 기반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현해가야 할 시점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마음의 구조와 작용원리, 그리고 이를 통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시된 마음공부의 모델이다. 

마음공부 모델은 편의상 현상 중심의 모델과 본성 중심의 모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모든 존재는 현상적으로는 끊임없이 변하는 무상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통해 고(苦)에서 락(樂)으로,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나 행복의 세계로 점차 나아갈 수 있다. 이처럼 현상 중심의 모델은 점진적인 공부 모델이다. 반면에 본성 중심의 모델은 원래 청정한 ‘본성(자성, 불성, 자연, 도심, 양심 등)’을 전제로 한다. 현상 중심 모델이 마음의 병증이나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면, 본성 중심 모델은 고락의 분별을 떠난 청정한 본성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우리의 본성(자성)은 마음공부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 할 수 있다. ‘지금-여기’에서 경험하고 있는 현재의 상태(병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가 모두 본성의 현현(顯現)이다. 본성(자성)은 마음의 병증이나 고통스러운 현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본성의 회복·자각·활용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앞의 현상 중심 모델도 본성 중심의 모델에 포함된다. 

마음공부 모델을 편의상 몇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분별(分別)’이다. 본성(원래 마음)에 어떤 조건(경계)이 부딪치면 그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는 데, 이것이 바로 ‘분별’이다. 분별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근본심(본래심, 진여심)과 분별심(현상심, 생멸심)의 구분이 가능하다. 대체로 동양 전통은 인간의 본성을 긍정한다. 본성은 자타(自他)를 비롯한 분별 이전의 상태 혹은 모든 분별이 사라진 상태이다. 이 자리는 마음의 바탕(心地)으로서 누구나 이미 갖추고 태어난 절대 평등의 자리이다. 

다음은 마음의 ‘층위’이다. 분별심은 다시 마음의 ‘층위’에 따라 표층과 심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원래 마음’이 경계와 접촉하면, 반드시 반응을 나타낸다. 이때 표면에 드러난 반응들을 표층의식이라 할 수 있다. 이 표층의식은 심층의식(잠재의식)에서 표출되며, 표층의식의 내용은 다시 심층의식에 저장된다. 그러므로 경계와 접촉할 때 심층의식이 표층으로 드러나므로 이를 잘 알아차리는 일이 우리의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다음은 마음의 ‘의지’이다. 경계와의 접촉을 통해 인식된 감각작용(오감)과 표상작용(개념화)과 같은 분별은 ‘일어난 마음’이라 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선택하는 분별, 즉 의지작용(심리적 형성작용)을 통해 ‘일으킨 마음’과 구분이 필요하다. 둘 다 경계에 대한 반응이란 점에서 분별심이지만, 전자가 경계를 대한 수동적인 반응이고, 후자는 경계를 향한 능동적 반응이란 차이가 있다. 즉 ‘일어난 마음’은 이전의 마음에 저장되었던 정보들이 밖으로 표출된 것이라면, ‘일으킨 마음’은 각자의 평소 욕구나 지향하는 목적(뜻, 願)에 따라 일으킨 의지적 반응이다. 둘 다 마음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의도(의지)에 따라 심신을 작용함으로써 직접 업을 짓는 행위가 된다. 그 작용의 결과는 자신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마음은 몸을 매개로 세상(환경)과 상호작용한다. 이 과정은 철저히 ‘인과보응의 원리’에 따른다. 그러므로 자신과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택을 위해 옳고 그름(是非)을 잘 분별하여 불의(非)는 버리고 정의(是)는 취하고 실행 공부가 중요하다.

이상에서 마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밝힌 것은 마음이 셋으로 구분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의 속성이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고 그 속성에 맞는 마음공부를 하기 위함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우주의 본원이자 인간의 본성인 일원(○)의 진리를 천명하고 그 속성을 공(空)·원(圓)·정(正)으로 밝혔으며, 이를 근거로 삼학(定-정신수양, 慧-사리연구, 戒-작업취사)의 공부법을 제시한 것이다.

먼저 본성적 측면에서는 분별을 제거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 된다. 주로 집중명상, 나아가  정신수양을 한다. 다음으로 경계를 만나 분별이 나타나는 현상적 측면에서는 표층에서부터 심층에 이르기까지 분별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인정(수용)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통찰명상, 나아가 사리연구 공부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본성과 작용의 양 측면의 공부가 병진된다. 한편에서는 불필요한 관념(분별성)을 제거함으로써 본성을 회복하는 일심을 양성하는 수양공부(動→靜)를 하고, 한편에서는 그 시비를 분별하여 정의를 실행하는 취사 공부(靜→動)를 한다. 이처럼 작용적 측면에서는 실행 공부를 통해 실제 공부의 효과를 나타내도록 한다. 

한편 이러한 마음작용은 곧 경계(환경)와 직접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우리의 심신작용은 주위의 인간관계와 주변 환경 등에 영향을 미친다. 그 영향은 ‘인과보응의 원리’에 따라 다음 순간의 경계로 되돌아온다. 환경의 영향은 몸을 통해 마음의 심층에 저장되고, 다시 (욕구에서든 목적에서든) 의지적 마음작용이 몸을 통해 환경에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마음공부를 할 때,  대자적 측면과 대타적 측면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공부가 기타 공부와 다른 점은 궁극적으로 대상과 주체가 일치한다는 점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그 주체와 대상이 구분(분별)되지 않는 공부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공부에서는 경계에 대한 반응, 즉 ‘분별이 나타날 때’ 그 순간 마음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 알아차림은 현상적 알아차림과 본성적 알아차림의 구분이 가능하다. ‘현상적 알아차림’은 모든 현상을 그 대상으로 한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본성적 알아차림’은 본성(자성) 그 자체를 비추어 아는 근원적 앎이며, 공적영지(空寂靈知)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상적 알아차림도 본성적 알아차림에서 비롯된 것이며, 현상적 알아차림이 숙달되면 궁극적으로는 본성적 알아차림과 합일된다. 

이러한 알아차림을 통해 비로소 본성(원래 마음)을 회복하는 공부(정신수양), 지금 여기의 일어난 마음(표층, 심층)과 경계(환경)를 자세히 알아가는 공부(사리연구), 그 마음을 잘 활용하는 공부(작업취사) 등이 가능한 것이다.

이상에서 마음공부의 모델을 본성(자성)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대체로 동양 전통에서 본성을 중시하고 서양의 전통에서 현상을 중시한다고 하는데, 이 모델을 통해 양 전통의 장단점이 보완될 수 있다. 또한, 과거의 공부가 본성과 현상을 밝히는데 주된 관심을 보였다면, 앞으로는 마음의 작용 측면과 실행, 그리고 관계적 측면이 중시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알아차리고 본성을 떠나지 않는 실행을 통해 정의롭고 은혜로운 마음공부 공동체를 만들어가길 희망해 본다.

■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장진영(진수) 교수
ㆍ동국대학교 철학박사(불교학)
ㆍ원광대학교 선명상 치유학과 교수

[2019년 1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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