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의 기도’ 올리기 적극 권장
은혜로 인도하는 이웃교화 출발점

박중훈 교무

[원불교신문=박중훈 교무] 교당에 부임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지난 일 년을 회고하고 내년도 교화계획을 수립하면서 다시금 가족교화의 중요성을 상기해 보았다. 가족교화는 “이 회상이 건설된 세상에는 불법이 천하에 편만하여 승속(僧俗)의 차별이 없어지고 법률과 도덕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며 공부와 생활이 서로 구애되지 아니하고 만생이 고루 그 덕화를 입게 되리라”라고 전망하신 말씀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가족교화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여부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전 가족이 입교를 하였다면 가족교화가 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자녀손들 모두가 교당에 다니고 있을 때 가족교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현재 교도들의 신성으로 보아 자녀들을 입교시키지 않은 경우가 오히려 적을 것이니 단순히 입교 여부는 형식적 부분을 밝혀놓은 것에 불과하며, 교당에 다니는 것이 그 형식에 내용을 채우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그런데 왜 가족교화가 힘이 드는 것인지, 아니 원불교만 힘이 드는 것은 아닌지 반문을 해보면서 어렸을 때 기억을 소환해본다. 집안의 제사의례, 어른을 모시는 도, 나아가 생활 속에서 조심해야 하는 일 등을 어디에 가서 따로 배운 바 없었으나 어른들이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렇게 훈습이 됐다. 그때 훈습된 것들은 이후 관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부모님 영정 앞에서 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어색함을 느끼는 마음 작용을 보게 된다. 이에 비추어 현재 교도의 생활문화 속에서 우리 교법을 바탕으로 한 신앙 수행 문화가 얼마나 자리 잡아가고 있는지 반추해보면 답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교법을 생활 속에서 구현하는 방안들은 견해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나는 공부인들에게 음식을 먹을 때 ‘공양의 기도’ 올리기를 적극 권장해보려 한다. 교단에서는 그동안 공양의 노래 부르기를 권장했다. 특별한 날 교도들이 모여서 함께 합창하고 식사를 하면 흥겹고 활기가 샘솟아 더없이 좋았지만, 은혜를 마음에 새기는 경건함의 깊이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더군다나 대중식당에서는 노래 부르는 것이 실례가 아니 될 수 없다. 그래서 공양의 노래를 기도의 형태로 바꾸어, 말로 하는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이제 교단적으로 이 운동을 해보았으면 한다. 가족들, 자녀들, 이웃들과 식사할 때에 공양의 기도를 올린다면, 이 소소한 실천으로 더불어 큰 가족교화의 시작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네 가지 크신 은혜 한 데 어울려 알알이 은혜로운 거룩한 공양, 몸은 길러 공도사업 더욱 힘쓰고 마음 길러 무상불도 이뤄지이다.’ 이 기도는 간결하지만 사은에 대한 감사와 다짐과 서원을 모두 담고 있다. 기도 시간도 10초면 충분하다. 이 기도가 나와 가족과 이웃을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교화란 가르치고 이끌어서 낙도세계로 인도하자는 것이다. 교도의 의무 중 입교 연원의 의무는 모름지기 교화를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교화 대상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가 교법을 실행해 기쁨 생활을 하고 그 기쁨을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나의 신앙 수행의 모습이 가족들에게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 가족은 오히려 원불교를 부정하고 비난하는 사람이 된다. 

그렇게 되면 원불교를 모르는 새로운 교도를 교화하기 위해 갑절의 애를 써야 한다. 그러므로 재가출가 교도가 가족들로부터 존경받고 지지를 받는 것이 곧 교화이며 그것이 이웃 교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정읍교당

[2019년 12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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