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타원 이수철화 종사

[원불교신문=안세명] “평상심으로 중도행하며, 방일하지 말라.” 수타원 이수철화(修陀圓 李修徹華·85·이리교당) 종사는 60대에 들어서면서 『정산종사법어』 권도편 45장~47장의 평상심 법문에 큰 자각이 섰다. 서가모니불께서 열반하기 전 아난존자가 슬피 우니, “방일하지 마라.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이니, 스스로 부지런히 깨쳐야 한다”라고 부촉했듯이, 그는 대종사의 교법을 실행하는데 게으름을 크게 경계한다. 이 법 만났을 때 대종사의 법을 깨닫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


학업에 대한 열정과 봉사의 꿈으로
충남 금산군 금성면 도곡리에서 출생한 그는 6남2녀 중 장녀로 출생했다. 산림조합에 근무하며 농업에 종사한 부친 이인득 선생과 명민하고 강인했던 모친 김귀중 여사의 기질을 체 받은 그는 8남매의 장녀로 남다른 의지로 수학기를 보냈다. 특히 학업에 대한 열정과 봉사에 대한 동경이 특별했던 그는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채영신 선생과 스위스 교육학자인 페스탈로치와 같은 삶을 살고자 수도사대를 진학했고, 초등학교 교사로서 15년간 봉직하며 낮은 곳에서 헌신하는 삶을 일생철학으로 삼았다. 여성으로서 학업의 기회가 좌절됐던 시기, 오직 배워야겠다는 억척스런 신념으로 매진했던 그에게 어려웠던 시골 살림에도 가장 좋은 밭을 팔아 학비를 건네줬던 부친의 사랑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 그의 삶은 오직 키워주고 길러준 부모의 은혜에 빚 갚는 생이다.


이리교당에서 커간 보은의 삶
시댁이 원불교인 관계로 결혼식을 이리교당에서 올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기도에 정성을 다하기로 마음먹고 봉공회장을 맡으면서 교당 살림에 눈 뜨게 됐다. 회계에 대해서는 수입·지출을 빈틈없이 처리했다. 늘어가는 직책에 부족함도 많이 느꼈지만 봉공회, 원우회, 동심회에 참여하면서 교당과 교구, 총부 교단사업에 불사하는 기쁨과 도반들과 일할 수 있음에 매 순간 감사를 올렸다. 때론 가까운 인연들이 마음을 힘들게 할 때면 스승으로 알고 공부 기회로 삼았다. 그러던 그에게 공부에 대한 갈증은 나날이 깊어갔다.


『정전』을 50번만 읽어라
당시 이리교당에는 양산 김중묵 종사가 교당 49재 법회를 도맡아 했다. 인과의 법문을 들을수록 진리에 심취하게 됐고 마음에 철이 났다. 양산 종사는 “정전은 주세성자인 대종사께서 직접 쓰신 경전이며, 과거 교법을 참고하되 주로 창조하고, 혹 혁신과 인용을 했다. 그러니 우리가 공부를 소홀히 해서 되겠는가. 정전을 50번 이상 읽어야 한다”라고 경책했다. 그 말씀이 명령으로 새겨졌다. 그 후론 교전을 정성을 다해 봉독했다. 스승의 법문을 읽고 외우니 그렇게 어려웠던 심고문도 수월하게 쓸 수 있게 됐고, 진실하게 임하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이 생에서 반드시 깨치겠다”라는 그의 일념은 하루에 교전을 20쪽씩 두 번씩 읽게 했다. 그래서인지 320번째 봉독한 그의 낡은 교전에는 맑은 서광이 비춘다.


법문은 꿰어야 보배
어느 날 그는 그동안 새긴 법문을 영생토록 실천하기 위해서는 “법문 구슬을 꿰어야 겠다”라고 자각했다. 기도를 마치면 “어떻게 구슬을 꿸 것인가” 그 일념뿐이었다.

첫 번째 구슬은 『대종경』 요훈품 2장의 “수도인이 구하는 바는, 마음을 알아서 마음의 자유를 얻자는 것이며, 생사의 원리를 알아서 생사를 초월하자는 것이며, 죄복의 이치를 알아서 죄복을 임의로 하자는 것”이다. 이는 곧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소식이다. 성불제중, 제생의세의 목표를 위해서는 세상은 하나, 우주는 하나임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반백년기념대회 시 대산종사에게 “깨달으려면 삼학병진으로 상시응용주의사항 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법문을 받들고 이중 4조인 ‘의두연마 하기를 주의하라’라는 말씀이 와 닿았다. 그 뒤로 의두요목 20조항을 연마하면서 무릎을 치게 됐다. “아, 이것이 하나자리구나. 공적영지, 일원상 진리는 그 하나를 여실히 설명한 것이구나.” 대적공실 법문이 나에게 갊아 있는 걸림 없는 하나의 소식임을 수증하게 됐다.  

두 번째 구슬은  『정산종사법어』 기연편 10장의 “다른 것은 모르지마는 이 법으로 부처 되는 길만은 확실히 자신하였노니, 그대들이 기필 성불하고자 하거든 대종사의 교법대로만 수행하고 나의 지도에 순종하라”라는 말씀과 무본편 35장 “안으로 삼대력과 밖으로 무념공덕이 무궁한 복락의 원천이니라”라는 법문이다. 

세 번째 구슬은 권도편 6장 ‘사홍서원(四弘誓願)’이다. 중생을 제도하고 번뇌를 끊으며, 법문을 성심껏 배우며 연마하고, 불도를 닦아 실천하는 원력은 공부의 제일 중대한 요건이다. 그는 『대종경』 인과품 16장에 “생멸 없는 진리와 인과보응의 진리를 믿고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 되나니라”를 표준 잡고 지난날의 후회와 원망은 공(空)으로 돌려버리고, 걱정은 미래의 번뇌이므로 끊어버리며, 이를 매일 기도 때 함축해서 가볍게 만들어 결산하고 해결한다. 

네 번째 구슬은 그 일 그 처소에서 ‘연꽃세상(Lotus World)’이 되는 것이다. 법훈편 16장에 “나는 그대들에게 연꽃이 되라고 권하노라. 이는 새 세상 수도인의 상징이니라”라는 말씀에 향기롭고 단아한 연(蓮)과 같이 매 순간 정견, 정어, 정사유하는 바른 삶을 살기를 서원한다. 

다섯 번째 구슬은 ‘일원상 법어’다. 오가(吾家)의 소유는 나와 우주 전체가 하나라는 것이며, 대소유무 이치 또한 하나이며, 생로병사의 이치가 춘하추동과 같고, 인과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고, 육근을 사용할 때 모자람과 부족함이 없이 걸림 없이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구슬이 꿰어지니 일원상 서원문에서 일원의 위력을 얻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는 것이 공부인의 귀결처요, 원불교인의 삶임을 깨닫게 됐다.


아름다운 이별, 49재 꼭 지내야
그는 매주 수요일 원병원에서 호스피스 활동을 한다. “나는 오직 대종사와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봉공이 아니다.” 그는 환자들을 대할 때마다 “운명은 천명이니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라” 라고 권한다. “임종 전 그 1분이 중요하다. 섭섭함이 있으면 내려놓고 염불과 법문을 통해 부처님, 하나님, 법신불 사은님께 의지해야 한다. 나의 존재 너머를 깨닫고 희망의 기도를 해야 한다.” 그는 호스피스 활동이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공부’임을 강조한다. 인생을 마감할 때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삶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서운함을 다 들어주며 마지막 남은 티끌도 흔연히 받아들이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49재는 꼭 지내게 하라. 교전을 선물하고 이를 한번은 꼭 읽게 하라”라고 유언 할 것을 주문한다. 천도재는 영가에게도 큰 도움을 주지만 재에 참석한 자신에게 혜복의 공덕이 오기 때문이다. 

수타원 종사, 그는 오늘도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직접 쓴 청정주 책갈피를 선물한다. “우리 대종사의 교법으로 부지런히 공부해서 함께 깨치고, 함께 보은하자.” 그의 사홍서원이다.    

[2020년 1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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