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2017년 3월 1일. 소성리 달마산 골프장은 헬기와 병력이 동원돼 철조망으로 둘러쳐진다. 그날부터 골프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농사 길임에도 불구하고, 진밭교에서부터 통행이 금지됐다. 원불교시민사회네크워크(이하 원씨네) 김선명 교무. 그는 진밭교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마을 주민들이 ‘통행할 수’ 있는 자유, 정산종사 구도길을 ‘순례할 수’ 있는 ‘당연한 자유’를 위해서였다. 풍찬노숙하며 보낸 일주일,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전국에서 모인 5천여 명의 평화시민들이 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천막교당을 세워줬다. 3월 18일 진밭 평화교당의 시작이다. 

천일이 지났다. 첫 겨울, 천막 안 생수병이 꽁꽁 얼어 돌덩이가 되는 영하 18도의 추위를 견뎌야 했다. 세 번째 겨울을 맞이하는 천일의 시간, 그에게 “평화를 위한 길에 원불교가 마땅히 함께해야 하는 이유”를 듣는다. 

이= 소성리 평화 100배가 천일의 적공으로 이어졌다.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김= 진밭 평화교당은 단순히 원불교만의 평화교당이 아니다. 불법사드를 철거하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수많은 종교인들과 성주 김천 주민들, 그리고 평화시민들이 함께 기도하고 적공하는 도량이자, 평화를 만들어 가는 상징적인 최전선이며 공동의 기도 도량이다. 또한 4년여 동안 모두의 기도로 진밭 평화교당을 지켜냄으로써 원불교는 평화의 종교라는 인식을 심었다.

이= 평화기도와 발걸음이 절실했던 만큼, 때로 위태로웠고 때로 ‘지역과 종교 이기주의’라는 외면의 벽도 단단했다.
김= 성주성지 수호로 촉발된 지난 3년여 의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성주성지를 지켜 신앙의 원천인 성소(聖所)를 지켜내야 하는 절박한 당위와 국가안보라는 이중적 가치 앞에 비틀거리면서도, 사무여한의 정신으로 정의의 깃발을 들고 오늘에 이르렀다. 정의와 불의의 척도에 앞서 교단 내 이해의 잣대가 때로 상충돼 우리의 행동을 주저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중의 지혜와 판단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왔고 단순한 님비가 아니었음이 알려진 것 또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 북핵과 탄도미사일로부터 한반도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다른 관점이 있다. 
김= 그분들의 충정도 존중한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사드(THAAD)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봐야 한다. 사드는 몇 가지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첫째, 환경영향평가를 꼼수로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면, 필요성 검토, 성능검토, 입지검토, 최종배치결정 순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모든 과정이 생략된 채 ‘최종배치 결정’을 내려놓고 거꾸로 일을 진행했다. 둘째,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이 백령도에 사드 레이더 배치를 요청했으나 중국과의 마찰을 고려해 거부했다. 미 의회조사국(CRS)에서도 한국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사드 미사일이 효용성이 낮다(2013.6.24)고 했다. 우리 국방부도 2013년 사드는 한국에 부적합하다고 판정(2015.5.21 진성준 의원실)내린 사실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드가 왜 갑자기 불가피한 선택으로 불법배치 됐는지 합리적 설명이 필요하다. 셋째, 최적지라던 성주 성산포대가 거짓으로 들통나고,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때에 8천 명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소성리 달마산에 사드를 전개했다. 이와 같이 사드체계는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못했고, 군사적 효용성도 검증되지 않은 무기체계이며, 오히려 북·중·러와 한·미·일의 편가르기로 동북아 신냉전체제를 불러옴으로써 한반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 원불교는 성지가 있기 때문에 사드를 반대하는 것 아닌가 등 몇 가지 문제 제기가 있다. 
김= 종교는 한 국가와 지역만을 위한 가르침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는 보편의 가르침이다. 정의와 평화라는 종교의 본지가 실천될 때 국가안보와 세계 평화도 실현된다. 소성리 사드는 궁색하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며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그마저도 모든 진행이 멈춰 있다. 무기로는 결단코 평화를 이룰 수 없기에 전쟁무기 사드를 반대한다.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이 남아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정의어든 죽기로써 실천할 것이요’ 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파하는 이들과 위로와 연대를 함께했던 모습 또한 기억하고 있다. 이런 행보들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가. 
김= 세월호 참사 이후 자발적으로 모인 재가교도들이 모임을 만들고 현장을 찾아가 가족들의 고통에 함께했다. 기존의 봉공회를 비롯한 교단의 후원과 활동가들의 현장 지원 등이 원활히 연계돼 구호 활동과 진실 규명을 위한 활동은 교법의 사회화를 위한 새로운 사례가 되었다. 그 어느 현장에서도 원불교의 이름으로 함께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되짚어 보면 이미 교단 창립기에 소태산 대종사는 식민통치의 질곡에 놓여 있던 민중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저축조합과 방언공사’를 통해 자력의 공동체로 희망의 삶을 개척하도록 지도했다. 정산종사는 해방 이후 물밀듯 들어오는 귀환 동포를 위해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펼쳤다. 당시 교단의 구호는 “우리는 동포를 살리기 위하여 거리로 나선다.”였다. 원불교는 시대 과업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교단은 인도적 차원의 구호사업에는 헌신을 다해 왔지만, 압축된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고통받는 수많은 민중들과 사회정의 실현의 과업에는 적극 나서지 못했다. 

이= 한편 종교의 본의를 생각해보게 된다. 종교의 본의는 무엇인가.
김= 말 그대로 마루 종(宗)에 가르칠 교(敎), ‘위 없는 가르침’이다. 종교를 가지는 이유로,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이야기한다. 마음에 평안을 얻고, 하늘의 명(命=진리)를 알아차려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종교의 궁극적인 진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종과 국가를 아우르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불변이기에 진리인 것이다. 이를 사랑·자비·은혜라고 한다. 
평화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안심입명은 소성리의 고통받는 주민들 곁에 앉아 손잡아 주는 것이요(安心), 국민을 속이는 정부의 거짓에 대해 평화의 기도로 그 잘못을 바루는 것(立命)이다. 

그는 원기101년 ‘시민사회개척교화 담당’이라는 교단 인사사령을 받았다. ‘교당없는 교당’ 원씨네교당 주임교무인 그. 그와의 대화는 원씨네 연대 단체들, 또 이들이 공유하는 교법성, 도덕성, 전문성, 연대성의 행동강령 등으로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진중한 이야기, 그 끝은 교단의 생명력이다. 교단 3대를 마감하며 지나온 100년, 그는 소태산 대종사의 경륜을 제대로 펼쳐왔는지 관성이 아닌 치열하게 성찰하자고 주문했다. 그리고 당면한 시대과업인 기후위기와 평화에 대한 문제에도 소홀하지 않기를 원했다. 

탈종교의 시대가 우리앞에 놓여있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눈 밝은 이들의 끊임없는 혁신이 있었기에 생명력은 유지”됨을 기억해야 한다는 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실천을 묻는다. “지금 우리는 개벽하고 있는가?” 

[2020년 1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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