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교무

[원불교신문=김원일 교무] “아이들 한 10~15명 정도 나오니까 거기 맞춰서 준비하면 돼.” 인수인계날에 전임교무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어양교당에 부임하고 나서 처음으로 어린이들을 만나는 날이라 그런지 마음이 설렜다. 아이들이 먹을 15인분 간식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 날은 눈이 너무 많이 내려 부모들이 자녀가 다칠까 염려해 데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다음 주에는 어린이 4명이 왔다. 나머지 어린이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부교무가 새로 부임하면 교도들은 ‘새로운 교무가 왔다고 하니 교당에 다녀봐라’ 하면서 자녀들을 이끌고 온다던데,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스러웠다.

그 다음 주부터는 서서히 어린이들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날 법회에서 한 어린이는 “교무님이 못 생겨서 교당에 못 다니겠다”라고 했다. 다른 어린이는 “예전 교무님은 문화상품권 선물을 줬는데 지금은 왜 안주냐”라고 따지다가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나를 따르지 않거나 법회가 끝나면 간식만 먹고 가는 어린이들이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 가운데 한 어린이는 꽤 잘 나왔는데, 나는 제발 나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왜냐하면 법회 시간 내내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굉장한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설교 중에 대놓고 나에게 멍청이라고 한다든지 또는 잘 앉아 있다가도 법당을 헤집고 다니면서 법회 분위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러면 다른 아이들도 부화뇌동하면서 난장판이 되기 일쑤였다. 그 어린이의 할머니도, 아버지도 “우리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드시죠”라고 위로했지만 나는 “네”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집에서는 “우리 교당 교무님이 잘 생기고 최고”라고 말한다는데 왜 교당만 오면  변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한가보다 하면서 제발 오늘만 오지 말라고 빌었다.

그 아이가 커서 4학년이 된 어느 날 나는 “너는 왜 교당만 오면 교무님을 괴롭히냐”라고 물어봤다. 이어서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하고 물어보니 그 아이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없이 “맞다”라고 말했다. 그 대답에 깨달았다. ‘아, 이 부처님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구나.’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그 부처님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왜 때려요”라고 묻기에 나도 “그냥”이라고 답해줬다. 그리고는 “앞으로 말 안 들으면 교무님은 아무 말 없이 너의 등짝을 때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 부처님은 교당을 나오지 않는 다섯 번째 어린이가 되었다.

처음 교화 현장에 나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4년이 지났고, 이제는 15~20명의 어린이 부처님들이 ‘아빠, 삼촌, 아저씨, 관장님, 선생님’하며 먼저 나에게 다가와 안아준다. 처음에는 ‘제발 일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빌던 마음이 ‘이번 법회 때는 무엇을 어떻게 더 잘 해줄까’하고 고민하게 됐다. 나의 미숙함으로 교당을 떠나 보낸 어린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번 겨울에는 초등학교 방학이 시작되면 교당스테이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어양교당 어린이 부처님들이 교당을 통해 많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다. 내가 어릴 때 주말이면 어김없이 교당을 갔던 것처럼 지금 어린이들도 교당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염원한다.

/어양교당

[2020년 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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