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세상의 시간과 학교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새해 다짐과 힘찬 약속들이 넘쳐흐르는 1월, 학교는 고요하다.

휘경여자중·고등학교는 서울 강북의 명문 학교다. 1970년 490명의 첫 신입생을 맞이한 휘경여자중학교는 올해 개교 50주년을 맞이한다. 팔타원 황정신행 휘경학원 설립자는 490명의 어린 여학생들을 환영하는 의미로 교정 한편에 49그루의 장미를 심었다. 아름다운 빛깔과 자신만의 향기로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반백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설립자의 염원과 사람 냄새 나는 인재를 키우려는 최준명 이사장의 신념은 변함없이 휘경학원을 지탱하는 큰 축이다.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중학생에게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문제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의 성향이 강한 요즘의 학생들에게 나눔과 보살핌이라는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 인성교육 프로그램 ‘마음 밭 가꾸기’를 비롯한 다채로운 마음공부가 진행된다. 세상의 중심이 ‘나’인 학생들에게 주변을 돌아보고 보살피는 직접적인 기회를 주기 위한 텃밭 가꾸기도 같은 맥락의 교육 활동이다.

중학교 현관 옆, 양지바른 곳에 99㎡ 남짓의 텃밭이 있다. 학급이나 동아리별로 구역을 나누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데, 봄이면 구청에서 나눠주는 상추나 깻잎, 토마토 등의 모종을 심고 반별로 이름표를 붙인다. 삼겹살 친구, 농부의 마음, 휘녀 마음 밭, 3반 외 접근 금지 등 학생들의 알록달록한 생각들이 이름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동수업을 오고 가는 길에 한 번씩 바라봐 주고, 풀을 뽑고, 그러다 때가 되면 수확한다. 수확한 먹거리들은 학급 단합대회에서 함께 먹기도 하고 작은 메모와 함께 선생님께 선물하기도 한다. 작고 사소한 경험이지만 학생들은 보살핌을 체험하게 되고 뿌듯한 추억이 된다. 텃밭을 담당하는 학생들이 얼마나 정성스러운지는 등하굣길, 한눈에 들어온다. 일부러 보려고 하지 않아도 신기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매일 정성으로 가꾸는 일이 얼마나 큰 변화를 주는지 텃밭이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사람 냄새 나는 여성을 기른다’라는 교육철학에 어긋남 없이 걸어온 50년도 그렇다.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그 길, 가장 큰 원동력은 휘경 가족의 변함없는 정성이다. 하루 삼시 세끼 밥 먹듯, 늘 잊지 않고 품어온 정성이라야 참된 정성이고, 정성이야말로 일을 성사시키는 가장 큰 근원임을 믿는다. 못 넘을 벽이라면 틈이라도 뚫어내는 것이 전략이라는 믿음으로 변해가는 교육환경과 그보다 더 빨리 변하는 학생들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으려 살피고 또 살피며 정성으로 키워 내려 노력한다. 방학이라 고요한 학교, 팔타원 황정신행 설립자가 심었다는 장미 꽃자리가 어디쯤일까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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