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평양의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은 2011년 설립돼 체육인을 중심으로 제품을 공급하던 평범한 공장이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공장은 북한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600여 가지의 다양한 상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탈바꿈됐다. 이 회사의 이정호 지배인은 2015년 “우리 단위가 경쟁자들에게 도전하며 애쓴 결과 우리공장의 것으로 남조선 식료품을 확고히 밀어냈고 중국산 식료품을 압도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사 제품이 판매되는 평양의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중국산 식료품이 거의 사라졌다. 

이 공장의 노동자들은 월급으로 45만~60만원(북한돈)을 받는다고 한다. 월급의 대부분이 기본급 외의 추가분배금(성과급)이다. 북한 공무원들의 명목 생활비가 1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엄청난 액수다. 이 공장의 성공 비결은 “기업전략을 바로세우고 사업을 현실적으로”  운영한 데 있었다. 새 제품 개발위주의 경영전략을 세워 “남의 것이라도 좋은 것은 무엇이나 우리의 구미에 맞게 빨리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소화하면 그것이 우리의 것을 늘이는 과정으로 된다”라는 입장에서 새기술, 새제품으로 세계적인 식료품 생산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판매 자금을 이용해 수산사업소나 식당 등 새로운 영역으로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2016년에는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 무진화가 실현된 신공장을 건설했다. 
 

평양 대성백화점 1층에 있는 ‘식료매대’에서 평양 시민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북한은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 등이 품질이 좋은 과자, 사탕을 생산하면서 식음료 제품의 국산화에 성공했다. 평화경제연구소 제공

 

기업혁신에 성공한 사례 속속 등장
다른 공장 사례도 있다. 1962년에 설립된 평양326전선공장은 북한최대의 전선케이블생산공장(종업원 약 1,500명)이다. 이 공장은 김정은시대에 들어서 국가가 지정한 제품의 생산계획(국가지표)을 실행하는 한편으로 신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생산(기업소지표)하거나, 지정제품 및 독자개발 제품에 대해서 구매자와 주문계약을 맺어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산제품의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이 공장은 2013년 기존임금의 20~30배로 임금을 인상했다. 그리고 “자체의 수익에 기초해 살림집도 건설해 종업원들의 주택문제를 해결”했다. 그러자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자기 맡은 작업에 대한 책임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 결과 이 공장의 생산량은 급속도로 늘었고, “이 공장에서 3∼4년 일을 하면 살림집이 차례진다(배당된다)”라는 말도 나왔다. 
 

기업책임관리제, 분권화와 자율성 확대 
북한에서 이러한 기업혁신 사례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현상은 김정은체제 출범이후 ‘기업책임관리제’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김정은시대 들어 북한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라 부르는 국영기업 개혁조치를 추진해왔다. 기업책임관리제는 계획, 가격, 판매, 자금조달, 재정관리, 노동력 고용 등에서 기업의 자율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한 조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4년 기업책임관리제에 대해 “공장, 기업소, 협동단체들이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에 기초해 실제적인 경영권을 가지고 기업활동을 창발적으로 해 당과 국가 앞에 지닌 임무를 수행하며 근로자들이 생산과 관리에서 주인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게 하는 기업관리방법”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공장, 기업소의 직장과 작업반에서 근로자들의 ‘담당책임제’가 도입됐고, 협동농장에서는 분조단위로 ‘포전담당제’가 시행됐다. 또한 노동에 대한 평가와 분배방법이 “근로자들이 일한 것 만큼, 번 것 만큼” 보수를 공정하게 받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기업과 협동농장이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분배하라는 것이다. 

기업책임관리제의 특징은 한마디로 그동안 국가가 쥐고 있던 생산 및 분배에 관한 많은 권한을 현장의 기업체에 대폭 이양하고 기업 경영의 재량을 각 사업체에 줌으로써 생산 활동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운 경제개혁 조치가 실시되면서 생산계획 수립과 무역의 자율화, 수익 처분 등에서 기업의 권한이 대폭 확대됐고, 경영권이 보다 폭넓게 기업에 부여됐다. 특히 국가계획 제품생산에 대해서는 국가가격제정위원회가 설정한 국정가격이 적용되지만, 자체개발 제품에 대해서는 가격제정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가격신고만으로 시장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과거와 달리 일부 상품의 가격을 시장가격에 맞춰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설비갱신 등으로 잉여 노동자가 발생할 경우에는 ‘노력조절권’으로 노동력 삭감을 제기하고, 재정관리권을 이용해 기업이익에서 노동보수 몫을 늘려 자체적으로 임금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자 기업의 ‘경영전략’이 중요해졌고, 기업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생산성 증대로 이어졌다. 

과거 북한 기업들은 성장 동기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원자재를 과소비하거나 투자를 남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업들은 예산이라는 제약조건을 엄격하게 지키지 않아도 됐다. 예산을 초과해도 중앙정부에 제기해 추가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혁신이나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려고 애쓰기보다는 상급기관의 비위를 잘 맞춰주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행위가 일상화된다. 북한은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경제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협동농장에는 ‘가족 단위 영농’ 도입
한편 협동농장에는 포전담당책임제가 실시되면서 가족영농제와 유사한 형태가 도입됐다. 포전담당책임제는 협동농장의 기본 생산단위인 분조별로 일정한 경지(포전)를 배정해 책임지고 농사를 짓도록 하는 제도이다. 아직 전국적으로 시행되지는 않았지만 협동농장에서는 모든 농장원 세대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해 포전담당책임제 시행세칙을 마련하고 “분조들을 한 집안 식구들이 함께 일하는 것을 위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 늘고 있다. 기존의 집단농업체제가 개혁되면서 계획 초과 생산물에 대한 농민들의 자율적 처분권도 확대됐다. 이처럼 개별 협동농장이 정책 집행상의 자율권을 가지고 실질적인 가족농 제도를 운영할 수 있게 되면, 앞으로 협동농장 운영에 상당한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나흘 동안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통해 ‘정면돌파전’을 2020년 투쟁 구호로 삼고, 제재 완화에 연연하기보다 자력갱생을 통한 경제 건설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의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회주의 기업책임관리제의 현실성 있는 실시’를 강조했다. 미국을 향해 전략문기로 맞서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지만 경제정책은 기존의 개혁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정책 담당자들은 “이제 경제개혁 기조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고, 세계적인 추세에도 맞지 않다”라고 말한다. 북한의 경제운영 방식의 변화가 향후 북한 주민과 남북경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2020년 1월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