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진 교도

[원불교신문=허경진 교도] 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여전히 바쁜 삶 속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나 자신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깨우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자신을 돌아보며 자성의 시간을 가지기에 좋은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의 경우에는 좋은 책이나 영화를 접했을 때가 가장 많다.

새해 첫 영화로 딸아이와 함께 영화 ‘천문’을 보고 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울림이 커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보게 됐고 끝나고 나서도 영화 속 대사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화는 오로지 애민의 마음으로 백성을 위한 꿈을 꾸는 왕과 그를 방해하는 세력이 주는 왕의 고뇌, 그리고 그의 꿈을 완성시켜주는 노비 출신의 벗이 만드는 이야기를 시간을 오가며 짜임새 있게 보여준다. 한석규, 최민식이라는 명불허전의 배우와 그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조선 초기 명나라의 간섭과 사대부의 입김이 드세었고 신분제가 조선이라는 유교 사회를 단단히 받치고 있다는 믿음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은 오로지 백성의 안온한 삶을 위해 노비 출신의 장영실에게 관직을 부여한다. 그리고 출신이 유일한 발목이었던 천재 장영실은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불후의 발명품들을 만들어 낸다. 나라의 자주성을 세우고 백성들을 깨우쳐 주고자 한 왕의 뜻은 시대적 상황에 번번이 부딪치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줄 한 인물과 함께 완성해 가는 과정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서 스승이자 제자이자 벗이었다. 그냥 그저 그런 왕과 신하사이가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성으로 맺어진 사이었다. 

올해 신년법문으로 내려주신 ‘신성’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닌 중근의 고비가 없는 둘의 믿음은 여러 대업을 성취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그저 지나간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가 명배우의 연기와 감정선을 잘 그리기로 유명한 감독이 만나니 영화 속 일들이 현재 나의 일인 듯 생생히 다가왔다. 

이 영화를 만든 허진호 감독은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 등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하는 멜로 영화의 대표 감독이다. 그래서인지 세종과 장영실이 보여주는 호흡과 조화가 남달랐다. 영화를 보며 지금 사회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일부가 누리는 권세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작업환경에서 목숨을 잃는 수많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각났다.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록 뛰어난 기능을 가졌지만 적은 소득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의 기사가 떠올랐고 기초과학 분야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해 안정된 길이 보장된 의대를 지원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떠올랐다. 영화는 과거 조선시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수많은 이슈들이 영화 속에 녹아 있었다. 

새로운 해이다. 그 숫자도 새로운 2020년이다. 많은 중요한 일들이 우리나라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 옛날 진정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어떠한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은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처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로 올 한해도 잘 살아내어야겠다. 

/강북교당

[2020년 1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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