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전산종법사는 원기105년 ‘신성으로 공부합시다’를 신년법문으로 내려주셨다. 소태산 대종사의 정법회상에 귀의한 우리 모두는 스승을 향한 독실한 신성으로 중근기의 병증에서 벗어나 불지로 가자는 것이다. 신성은 법을 담는 그릇이 된다는 점에서 대종사 이하 역대 스승님들이 한결같이 강조하신 만큼 이 법문을 표준삼아 재가출가 전 교도들이 경자년 한 해 참된 공부에 매진하기를 염원해 본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3장에서는 작은 지식에 자만하거나 외화에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 무식하고 구변이 부족하더라도 신근이 있는 사람이 장래의 법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종사의 정법회상에서는 스스로 잘난 체하는 사람보다 스승의 지도에 따라 묵묵히 삼대력을 키워가는 사람이 참된 주인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지도하고 이끌어 주실 스승, 우리가 신성을 바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실 스승은 누구일까? 먼저 진리를 깨치고 실행하는 사람이다.

대산종사는 ‘도가의 큰 신심은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과 내가 하나 되는 사대불이신심(四大不二信心)’이라고 했다. 진리와 스승과 법과 회상은 원래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진리를 깨치고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스승이 되는 것이요, 그 스승이 밝혀주는 가르침이 바로 법이 되는 것이며, 그 진리와 법으로 중생구제를 위해 열어놓은 교단이 바로 회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성을 바쳐야 할 스승은 앞서 일원의 진리를 깨치고 그것을 실천하는 분이며, 또 그 깨달음을 법으로 설하여 우리를 깨달음으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며, 이 깨달음에 바탕해 세상의 혼란과 어지러움에 헤매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앞서서 실천하는 분이다. 이렇게 누구나 먼저 깨달아 실천하면 스승이 될 수 있고, 대종사의 법을 세상에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교단을 ‘공전(公傳)’의 회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승은 무엇을 앞서 깨닫고 실천한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무아(無我)’의 진리를 깨닫고 ‘봉공(奉公)’을 실천하는 것이다.

대종사는 일원의 진리가 ‘원만구족 지공무사(圓滿俱足 至公無私)’라고 했다. ‘나’라는 상(相)을 내려놓고 세상 만물이 다 사은의 공물(公物)임을 알아서 천지만물을 부처님으로 불공하는 보은의 도리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일원의 진리에 합일하는 것이다. 지공무사와 무아봉공이 바로 깨달음의 자리인 것이다. 그런데 ‘무아’의 깨달음이 전제되지 못하면 참된 ‘봉공’은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자칫 유아(有我)에 집착하여 ‘봉공’이 아닌 ‘빙공영사(憑公營私)’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따라서 오로지 공도에 헌신한 종법사 이하 스승님들을 거울삼아 ‘무아봉공’ ‘지공무사’ 공부로 우리도 공도의 참 주인이 되자.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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