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모묘원 永慕墓園

[원불교신문=김세진 기자] 몇 년 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해외여행 때 도시에 묘지가 있으면 꼭 한 번씩 가본다는 김영하 작가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게 아니니까”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아름다운 묘지에 대해 재미있고 의미 있게 풀어낸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묘지가 많다. 익산에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부하는 공원묘지가 있다. 바로 영모묘원이다.
 

영모묘원 역사
전북 익산시 왕궁면 호반로 173-45에 위치한 재단법인 영모묘원은 원기68년(1983년) 6월 16일 주무관청인 전라북도로부터 허가 받았다. 영모묘원은 원불교 예법정신에 바탕해 조상들에게 편히 잠들 안식처를 만들어 보본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설립 됐다. 또한 토지의 경제적 활용을 계획, 묘지를 공원화해 국토의 효율적 개발, 나아가서는 가정의례 준칙의 기본정신을 선양, 국민도의 함양에도 이바지할 목적이 더해졌다. 

영모원이 교단의 공식기관으로 발족한 것은 원기63년 10월, 제170차 원의회 결의에 의했다. 종래에 시행해 왔던 제사제도의 부활과 이에 따른 헌공자금관리, 묘지관리 업무를 주관하는 한편, 중앙총부 유지사업회에서 출연한 익산군 웅포면 대봉암리 소재의 임야 230,000㎡을 기본재산으로 별도의 법인체 추진 허가(원기65년)를 얻었다. 소정의 계획 사업을 추진하려 하였으나 현지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부득이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원기67년 7월에 다시 지금의 영모묘원 설치기지인 익산시 왕궁면 소재 임야를 매입하고 법인설립 허가를 추진해 현재 총면적 350,000㎡로 14,000여 기의 묘지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에 이른 것이다. 

영모묘원이 설립되기 전에는 주산종사를 비롯한 교단 초기 전무출신과 재가 교도들의 묘소는 현 이리자선원 터인 알봉 공원묘지에 있었다. 영모묘원이 완공되자 40여 년 동안 교단의 첫 공원묘지 역할을 해온 알봉묘지를 정리하고 전부 이장했다. 현재 매장 수는 14,000 여기 중 8,000 여기가 입묘됐고, 4,000 여기가 예약 중이다. 납골 봉안당인 대원전에는 2,700 여위가 봉안됐다.


스승님 뜻을 이어받아
현재 영모묘원에는 이현덕 원장과 최주일·김관중 교무, 송인영 덕무와 김도성 예비도무, 오주원 교도가 근무하고 있다. 이현덕 원장은 “대산종사님의 ‘일원주의는 대세계주의요 일원사당은 대세계 사당이니 천불 만성과 전 선령(先靈)과 전 생령(生靈)을 위한 숭덕 존공의 큰 불사요 큰 불공이니라’라는 법문을 마음에 깊이 새기며 산다”라고 영모묘원에서의 초심을 회고했다. 이어 그는 “조직을 혼자서 이끌어가기보다 직원들이 합심해서 하고 있다”라며 “특히 송인영 덕무가 회계를 철두철미하게 처리한다”라고 직원들을 칭찬했다. 최주일 교무는 “기관장은 일반적으로 관리하고 감독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원장님은 솔선수범하신다”라고 전했다. 모두가 일심으로 묘원을 관리하고 매일 기도를 올리며 축원하는 그들에게서 활불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매년 효도·의식 교화의 장 펼쳐
영모묘원은 설날에 1만여 명, 추석 때는 3만 여 명을 포함해 한해에 추모를 위해 10만 여 명이 찾아온다. 묘지와 봉안당과 자연장을 갖추고 있으며, 사시사철 꽃과 녹음으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송인영 덕무는 “전국에서 형제자매들이 모여 참배를 하고 제사를 모시고 오랜만에 식구끼리 만나 효도의 장이 펼쳐진다”라며 “선산 개념으로 고조·증조·할아버지·부모님까지 다 모신 분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합동 특별천도재를 올려 의식교화의 장도 펼쳐진다”라고 전했다. 
 

 

한국의 상·장례 문화 선도
한국의 상장문화로는 매장(埋葬)문화, 화장(火葬)문화, 자연장(自然葬)문화를 들 수 있다. 영모묘원이 이 모두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시민들은 현재의 혐오스런 묘지보다는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영모묘원처럼 묘역을 봉분 대신 평장(平葬)과 평석(平石)으로 만들고 화장해 납골당을 활용하는 공원으로 조성하길 바라고 있다’란 기사(<연합뉴스> 2004. 6. 4. 보도)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원기75년 평장을 하게 된 연유를 묻는 교도에게 대산종사는 “교단 초기에 대종사님의 아들이 작고했는데 대종사께서 평장을 하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반대했지만 결국 평장을 했다. 그것이 기연이다”라고 전했고, 이어 “앞으로는 묘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봉안당에 모셔야 한다. 10여 년 전에 봉안당을 하려고 했는데 대중의 인식이 그에 미치지 못해 그냥 뒀다. 앞으로는 납골당을 해야 한다”라고 부촉한 바 있다. 대산종사의 뜻에 따라 교단은 원기82년 5월에 대원전(봉안당)을 건립해 상·장례 문화 개선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준비
영모묘원의 운영은 사회적으로 모범사례로 손꼽히지만 교단적으로도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김관중 교무는 “대산종사는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고 일을 추진해야 한다고 법문하셨다. 추원보본의 정신을 이어가고 총부 유지불사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스승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라며 “스승님은 세계 사당이 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찾아온 이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원불교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해 미래를 준비해야 하겠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라 규정한 철학자도 있고, “산다는 것은 무덤을 향하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다가가는 과정”이라고 말한 소설가도 있다.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은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됐다. 영모묘원을 바라보니 “생은 사의 근본이요 사는 생의 근본이라.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조만(早晩)이 따로 없지마는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해야 한다 (『대종경』 천도품 1장)”라는 법문이 떠오른다. 가장 아름다운 공원, 영모묘원에서 생사를 마주하다.

[2020년 1월24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