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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信誠’에 대하여
‘신성信誠’에 대하여
  • 조경철 교무
  • 승인 2020.01.21
  • 호수 19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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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이란 깨달은 이의 말씀을
실행하는 데 온갖 힘 다하는 것
조경철 교무
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얼마 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9살짜리 어린아이의 주제가를 들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주제가의 제목은 ‘내가 바로 ○○○이다’였고 어른 뺨치는 가창 실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게 한 것은 어린아이의 특출한 가창력이 아니라 ‘내가 바로 ○○○이다’라고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힘 있는 목소리로 외친 그 자신감이었다. 나는 과연 한번이라도 ‘내가 바로 ○○○이다’라고 세상을 향해 자신 있게 소리쳐 본 적이 있었던가를 자문했을 때 즉답을 하기 어려웠다. 내 의지보다는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틀에 맞추느라 급급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를 돌아보게 하는 순간이었다.

경자년 새해를 맞아 전산종법사는 ‘신성으로 공부합시다’라는 신년 화두를 세상에 던졌다. ‘신성’이란 용어는 국어사전을 찾아보아도 나오지 않는 우리들의 고유명사와 같은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우리는 ‘신성’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체적으로 신앙·신심 등의 용어와 혼용해 사용하는 것이 다반사인데 파자(破字) 방식을 통해 ‘신성’의 참  뜻을 헤아려 보고자 한다. ‘파자(破字)’란 한자의 자획(字劃)을 분합(分合)해 뜻글자인 한자의 본뜻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신성(信誠)’은 믿을 신(信)과 정성 성(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순하게 풀어보면 ‘정성스럽게 믿어라’ 혹은 ‘믿음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라 할 수 있으며 원불교 대사전의 풀이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추상적이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정성스럽게 믿는 것인지, 믿음에 대한 지극한 정성이란 무엇인지 헷갈리게 하여 관념적 신앙에 빠지게 하고 일상에서의 실행으로 이어지게 하는데 큰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개인적인 소견임을 전제하며 파자 방식을 통해 알아본 ‘신성’의 참뜻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믿을 신(信)이다. 누구를,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 이 물음은 신앙인으로서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명제이며 이것에 대한 잘못된 답을 가지고는 올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믿을 신(信)을 파자해 보면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의 합자(合字)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풀어 보면 사람(人)의 말(言)을 믿어라(信)가 된다.

그럼 어떤 사람의 말을 믿을 것인가? 여기에서 의미하는 사람(人)이란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가 아니라 깨달은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선택한 신앙의 대상을 향해 경배하나 실질적으로는 말씀을 믿고 실행하고자 노력한다. 누구의 말씀인가? 일반적으로 소태산·석가모니·예수 이런 분, 즉 깨달은 사람의 말(言)을 믿는 것이다.

두 번째, 정성 성(誠)이다. 정성이란 흔히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 되고 성실한 마음이라고 이해된다. 잘못된 해석은 아니지만 여기에서 또 하나의 물음표를 던져 본다. ‘무엇’에 온갖 힘을 다하려 하는가? 그 답을 얻지 못하면 힘만 쓰고 소득은 없는 헛일이 되고 말 일이다.

정성 성(誠)을 파자해 보면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의 합자(合字)임을 알 수 있다. 이를 풀어보면 말씀(言)을 이루라(成)가 된다. 결국 말씀(言)을 이루(成)는 일에 온갖 힘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정리해 보면 ‘신성(信誠)’이란 깨달은 사람의 말씀을 일상에서 실행하는 데에 온갖 힘을 다하라는 것이 그 참뜻임을 알 수 있다. 과연 나는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말씀을 일상에서 실행하기 위해 온갖 힘을 다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되는 이른 아침이다.

/군산교당

[2020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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