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광 교무

[원불교신문=박도광 교무] 서구종교의‘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18~19세기 미국의 보수적인 신앙운동 경향인 복음주의(evangelicalism) 전통 안에 일어난 신앙운동이다. ‘근본주의’란 원래 ‘성서 무오설’ 등을 주장하는 미국의 개신교계 종교운동에서 비롯돼 예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으나,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과격한 종교운동으로 전개됐다. 따라서, 최근에는 ‘근본주의’라는 말이 유대인들의 정통주의 집단, 호전적인 종교와 인도의 배타적인 힌두교 집단, ‘알카에다’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부 등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배타적인 무슬림 집단 및 정치집단 등에도 적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종교인의 절대적 신념은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성향을 지니며,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의 원인을 제공해 왔다. 역사적으로 11세기 후반부터 약 200년 동안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 간의 참혹한 십자군전쟁은 세속적 정치권력과 배타적 종교적 신념의 접점에서 이뤄졌다.  

20세기 발칸반도의 보스니아내전과 코소보사태에서 정치권력과 종교적 신념에 의한 인간청소는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중동지역의 전쟁으로 인한 이슬람권 국가와 미국과의 갈등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뉴욕 맨하탄 지역의 ‘9.11 테러’ 사건을 ‘이슬람 근본주의’ 소행으로 여겨 아프카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이러한 여파는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져 수많은 난민들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종교 간의 갈등과 반목 심화 현상은 보이지 않는 종교의 전쟁으로 일어나고 있다.

종교계에서는 이러한 종교적 배타성을 넘어서기 위한 신학적 담론과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실천 운동이 전개됐다. 천주교 신학자인 칼 라너(Karl Rahner, 1904-1984)는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e Christen)이론을 정립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절대주의로부터 우월적 상대주의로 선회해 종교 간 대화와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가톨릭의 타종교에 대한 중대한 변화이다. 또한, 한스 큉(Hans Kng) 신학자는 바티칸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기도 했지만, 다양한 신념의 종교인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지구윤리를 주창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모든 종교의 근원은 하나로서, 종교적 신념으로 인한 갈등과 대립은 성자의 근본 뜻을 모르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다양한 종교의 신자를 만나면서, 천도교인을 만나면 천도교를 배우게 되고,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그리스도를 배우게 된다고 했다. 개신교를 신앙하였던 한 장로가 그의 제자가 되고자 할 때, “예수교에서도 예수의 심통 제자만 되면 나의 하는 일을 알게 될 것이요, 내게서도 나의 심통 제자만 되면 예수의 한 일을 알게 되리라”라는 가르침을 줬다.

소태산은 이웃 종교에 대해 열린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모든 종교의 교지(敎旨)도 이를 통합해 ‘광대하고 원만한 종교를 신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정산 송규의 삼동윤리(三同倫理)와 대산 김대거의 종교연합 UR(United Religions)운동으로 전개됐다. 이웃 종교의 고유한 신앙과 수행의 특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의 자세를 실천하는 폭넓은 종교 다원주의적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1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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