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교구 금강교당 김교원 교도

15년 써온 명함에 ‘원불교’ 넣어
교화 위해 퇴직 후 정수기 기사일
올해 교당 출석인원 100명 목표
만나는 인연마다 교당으로 인도

[원불교신문=최지현 기자] 전북 익산시 동천로 7길8, 최근 봉불식을 마친 금강교당이 아파트 단지 사이에 우뚝 서있다. 설계, 건축비, 건축기간이 모두 완벽하게 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류지성 교무 옆을 보좌하는 홍산 김교원(61·弘山 金敎圓) 교도회장의 힘이 컸다. 매일 아침 9시가 되면 어김없이 교당으로 출근한다는 그, 김교원 교도회장을 1월 31일에 만났다.  

“금강교당은 지난해 10월 신축 봉불을 했습니다. 교무님과 비교적 최근 신축한 교당들을 돌아다니며 답사했고, 각 교당의 장점을 부각시켜 설계를 했습니다. 답사가 큰 도움이 되어 재설계나 하자 보수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고, 건축비와 시간이 많이 절약됐습니다.”

완벽하게 설계를 마칠 수 있었던 데에는 김 교도가 건축 관련된 일에 종사했던 것이 도움이 됐다. 10여 년 동안 홈샤시 대표로 일한 그가 사용해온 명함에는 “마음공부, 원불교에 입문하여 열심히 하니 행복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교도로서 항상 남들에게 모범이 되자는 다짐과 명함을 보고 원불교에 관심있는 이들을 교화하고자 한 그의 아이디어였다. 

“4~5년동안 거래하던 사장님이 있는데 제가 감사해야하는 입장인데 늘 저에게 감사하다고 해서 ‘저 분은 참 은혜로운 분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장이 저에게 ‘신앙 생활을 안하시는 것 같은데, 함께 여호와를 믿자’고 말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그날로 즉시 인쇄소에 가서 새 명함을 인쇄했습니다.”

이런 그에게도 경계가 찾아왔다. 그 에피소드가 무척 궁금해졌다. “원기84년 3월 17일에 입교했습니다. 사업 실패로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초등학교 동창 7명을 만나서 모임을 했는데, 항상 행복한 얼굴을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되냐고 물었고, ‘원불교’에 다니면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바로 그가 김윤태 교무입니다. 그 연원으로 금강교당에 나오게 됐는데, 당시 요인회에서 한 남자교도가 교무님과 언쟁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경계가 생겼고, 극복하지 못한 저는 교당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15개월 뒤 문득 교당을 너무 오래 쉬었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없이 교전 가방을 챙겨들고 교당에 나왔습니다. 그 날로 지금까지 법회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두 번째 경계는 아내인 김성원 교도와의 사이에서 생겨났다. 교당을 다니지 않았던 아내는 명함에 ‘원불교’를 인쇄해서 다니는 그가 못마땅했다.

“갑자기 해약 전화가 왔습니다. 제 명함을 본 계약자가 본인은 기독교 신앙을 하는데 원불교를 믿는 사람인줄 몰랐다고 해약 통보를 해온 것이죠. 그 뒤로도 자주 이런 일들이 생겼고, 아내는 한발 물러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아내에게도 불공을 드렸고, 결국 일도 잘 풀리고 아내도 함께 입교하게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중앙, 단장, 총무, 부회장, 회장 금강교당에서 그가 걸어온 역할은 무척이나 크다. 교화 열정이 가득했던 그는 원기103년 새로운 도전을 했다. 

“7년전 어깨 수술을 하고 퇴직을 한뒤, 어떻게 하면 교화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집에 방문한 정수기 기사님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직업이 정수기 기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원기103년 교육을 받고 모 정수기 업체에서 기사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법문 말씀을 인쇄해서 만나는 인연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는데,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공단쪽 담당을 맡게 됐고,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일을 그만두고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현재 원병원에서 목욕봉사를 하고 있다. 또한 익산에서 가장 크다는 이리국제로타리클럽에 가입해 봉사와 교화를 함께 펼치고 있다. 

“원병원에서 목욕봉사를 하면서 입교만 하고 교당에 나가지 않는 간호사들을 교당으로 재입교 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리국제로타리클럽에서 지구보조금 사업을 통해 용안은혜마을, 이리보육원, 삼정원, 동그라미재활원 등 교단 내 기관 및 단체에 작게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 교화를 하는 것이 보람되고 행복합니다.”

매일 아침 9시면 교당에 출근해 4시에 퇴근을 하는 김교원 교도회장. 그는 비가오나 눈이 오나 교당 지킴이로서 최선을 다한다. 오가는 인연들에게 차를 내어주며 원불교를 설명하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교도들을 위한 ‘두 발’ 역할도 자처한다. 

“올해 15년된 교당 승합차가 있습니다. 이 차를 처음 샀을 때부터 지금까지 차량봉사를 했습니다. 봉고차 나이와 제가 할머니들을 모시고 다닌 햇수가 같은 거죠. 집안 살림보다는 교당을 우선으로 하는 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교화’로 시작해 ‘교화’로 인터뷰를 마무리한 그는 여전히 열정으로 가득찼다. 교당 출석인원 100명, 올해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묵묵하게 교당을 지키는 그, 금강교당의 지킴이 김교원 교도다.

[2020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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