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자정 기능 작동돼야
교법을 즐길 때 더욱 행복해져

이윤덕 교무

[원불교신문=이윤덕 교무] 헤아릴 수 없는 인연의 윤회 속에서 필연코 마주한 만남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사은과 나와의 관계다. 내가 지어서 받았든 함께 지어서 만들었든 주고받은 거래 속에서 나툰 삶의 시비이해라는 파노라마는 그대로가 아름다움이다. 세상이 요란하고 국정이 시끄러운 것은 진영논리에 휩싸여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의 몸부림이다. 재가와 출가라는 인연으로 꾸려가는 원불교 교단과 교당에서도 특정인에게 이롭고 해로운 것에 따라 편 가르고 줄을 세운다면 불협화음이 생길 것이다. 크고 작건 간에 필연코 조직은 권력을 생산하게 된다. 우리 교단과 교당 역시 이것을 피해 갈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세속적인 관점이라며 비판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인사명령 체제로 운영되는 것만으로도 종교 속 권력은 살아 있는 것이니 어찌하랴. 조직이 커갈수록 정비례해 커지는 권력이 구성원들이 부처로 전변되는 일에 쓰이고,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 사용되는 도구라면 누가 그 힘을 비난하겠는가?

원불교는 나에게 산소다.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관계인데 나부터 시작해서 세상 사람들은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 매연을 내 뿜는다. 결국 산소는 오염되어 숨쉬기 곤란한 위험 수위에 이르렀다. 교단이나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자정기능이 작동되면 시일의 장단은 있을지언정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센 힘을 가진 누군가가 무지해서 그렇든, 자신의 이익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하든 자정기능을 방해하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미래의 일어날 일이라 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지연되고 말 것이다. 여론이 갈리어 내편 네편으로 나뉘고 대립해 결정의 시간이 흘러가 때를 놓친다면 숨쉬기 어려운 상황은 점점 악화될 것이다. “물욕 충만 이 세상에 위기 따라서 구주이신 대종사님 탄생 하시사 자수 성각 하신 후에 법음 전하니 유연중생 모여들어 도문 열도다.” 성가 120장 가사처럼 원불교는 물질의 노예로 고통받는 일체 중생에게 정신을 개벽하자는 신선한 산소다.

개교 105년이 된 지금 우리들에게 펼쳐진 세상은 처음보다 훨씬 강력해진 물욕의 세상이 됐고, 재물이 근본이 되고 주인이 됐다. 의로운 사회(資本主義)의 모든 것들이 돈과 권력과 명예에 천착된 현상을 돌아보며 아직은 세상의 희망은 여기에 있음을 알고, 힘써야 한다. 이것이 “신성으로 공부합시다”라는 전산 종법사의 신년법문을 실천하는 길이요. 내가 진급하는 길이다. 필자는 교단이라는 천연 숲에서 만들어지는 산소가 제생의세의 치료법이라 믿고 실천하고 있는 출가 공부인이다.

원각성존 소태산 부처님이 열어준 새 회상이 담고 있는 고귀한 가르침을 알고 믿고 사용해가는 그래서 더 큰 회상으로 만들어가는 재가와 출가 공부인 중 하나가 되고자 한다. 원불교 교당은 교법이 뷔페 상으로 차려진 공부방이다. 교무가 있는 곳이 곧 법당이라는 생각으로 그때 그때 할 일들을 해야 한다. 교무가 스스로 고생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다. 이 일이 가장 최선을 다하는 나의 행복 발견법이기에 기쁘게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출가 공부인은 재가 공부인의 모범이라고 한다. 해외나 국내나 처지와 실정에 따라 힘들고 어려운 일의 차이는 나의 행복 척도일 뿐이다. 재가 공부인은 교단과 출가 공부인의 바탕이 된다. 출가 공부인의 권위는 내려놓을수록 올라가는 속성이 있고 재가공부인은 교무가 알아주지 않을 때도 이 법을 즐긴다면 더 행복해 질 것이다. 그래서 공부인에게 원불교는 행복한 자기 자신인 것이다.

/레겐스부르크교당

[2020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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