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림 교도

[원불교신문=최혜림 교도] 자기 전에 감사일기를 쓴다. 다이어리에 상시일기를 쓸 공간을 마련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십 분이라도 좌선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쩌다보니, 원불교 교도의 의무를 나름 성실히 이행하는 청년 교도가 됐다. 

어떻게 나는 이렇게 됐을까? 나는 대학교 입학 때부터 원불교 학사에서 1년 반 넘게 살았다. 그 기간 동안 ‘열심히’ 교당에 다녔다. 토요일마다 청년 법회에 나갔고, 매주 수요일에는 저녁 공부방에 참석했으며,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서 좌선을 했다. 

내가 학사 이야기를 꺼내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학사에서 살았던 경험이 나를 변하게 했다고 추측한다. 이 추측이 맞다면 학사 운영을 위해 애쓰는 많은 교무님과 교도님들을 미소 짓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사에 사는 큰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그 분들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나는 학사 때문에 변한 것이 아니다. 

나의 변화는 학사 밖에서 시작됐다. 내가 원불교 교도의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이행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내가 대학생이 됐을 때, 캠퍼스는 더 이상 낭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먹고 노는 것 말고도 대학생이 해야 할 것은 아주 많았다. 학점도 잘 받아야 하고, 자격증도 따야 하고, 학자금을 대기 위해 알바도 해야 하고, 그러는 와중에 대외 활동도 한 가지 이상 해야 했다.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대학 생활에 실망했고, 점점 지쳐갔다.

학교에서도 할 게 많은데, 교당과 학사에서 하라고 하는 것들도 많았다. 교도니까 감사일기도 써야 하고, 상시일기도 써야 하고, 조석심고도 올려야 하고, 아침에 좌선도 해야 된다고 했다. 해야 할 것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었다. 지친다는 이유로 취업 준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사회의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반면에, 교도의 의무는 소홀히 해도 될 것 같았다. 내게는 교도의 의무가 뚜렷한 목적 없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왜’ 그 의무들을 해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를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고, 스스로 알아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나는 점점 학사 생활을 대충하게 됐다. 감사일기도 학사 교무님이 검사할 때에 맞춰 간신히 한 편을 썼고, 상시일기는 월 말에 몰아서 체크했다. 좌선도 마지못해 했다. 학사에서 나온 다음에는 하는 척마저도 그만뒀다. 

지금은 그렇게 생활했던 것을 후회한다. 감사일기 쓰기 같은 원불교적 활동이 목적 없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활동이 취업뿐만 아니라, 내가 잘 사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걸 교당 밖에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감사일기 쓰기, 상시일기 쓰기, 좌선 등을 왜 해야 하는지, 하면 무엇이 좋은지를 교당이 아닌 책 속에서 배웠다. 그것도 원불교와 전혀 관련 없는 책 속에서.

요즘 청년들은 해야 할 것이 많다. 원불교를 믿는 청년은 해야 할 것이 더 많아진다. 교도의 의무를 왜 해야 하는지 모르는 청년은, 나처럼 원불교를 버거운 짐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원불교가 이제 막 종교 생활을 시작하려는 청년들에게 조금 더 친절한 곳이 됐으면 한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약간의 친절함만 갖추면, 원불교는 청년 교도들에게 의지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천안교당

[2020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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