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의 현실인연이 끝났다. 필자가 염산정사를 만난 건 원기92년 1월이었다. 원로원 근무를 마치고 삼정원에 부임함으로 관계되어 진 것이다. 회상하면 첫 모습의 기억은 점잖아 보이는 선비의 모습이었다. 5년의 시간을 함께하고 자선원으로 이동하면서 4년의 사이가 있었고, 원기102년 다시 삼정원으로 사령되었으니 만났으니 도합 8년의 인연을 가진 셈이다.

지난 1월 설 전전날 염산정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게 된 것도 일반적인연이 아니라 생각된다. 원로원근무 11년 생활 속에 많은 교단의 원로수행자들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러나 현장에서 직접 열반의 모습을 목격한 열반은 처음이다.

발인식 까지 원광대학교 장례식장에 안치된 염산정사의 축원독경시간에 참석하면서 염산정사에 대한 가지가지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이것은 보여주기가 아닌 흔적 없이 살다간 한 수행자의 모습을 후진들에게 기억되게 하기 위함의 뜻이 스며있다. 그것은 필자가 십년이 넘는 세월 많은 원로수행자들을 모시고 살면서 가슴에 담아왔던 일이다. 선진 원로수행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후진들은 표본삼아 공도자정신을 함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1. 철저한 수행자의 모습
염산정사는 철저한 아주 철저한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처음 염산정사의 편지를 받아본 건 원기92년 어느 봄날이었다. 한문을 사용하여 적어 보낸 종이엔 2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가. 나는 교단에 나아가 할 일이 많은 사람이네.”

답은 원론적인 답(정신과적)으로 전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필자가 처음 사회복지를 시작함으로 경험이 부족했던 답이라 생각되어 죄송함이 있었다. 2번째 편지는 다음 해 정초에 전해왔다. 내용은 지난번 편지와 대동소이했다. 염산정사를 찾아뵈었다. 모시고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말씀을 드렸다. “제가 교단에서 염산님을 여기로 모시게 된 것은 3가지 뜻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정토님과 자식들에게 보은하는 것이고, 둘은 상산아버님께 효도하는 것이 되고, 셋은 교단에 공익을 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염산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 후 염산정사와의 부딪힘은 정중한 합장으로만 이어졌다. 관찰해 보건대 모든 것을 인지하시고 목표의 전환을 하신 것 같았다. 일체의 프로그램 참여도 멈추시고 면벽수행에 들어갔다. 피곤하시면 누워서 선하고 운동시간에는 행선으로 일관하였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비도 관여하지 않고, 소식하시고, 간식은 일체 들지 않으셨다. 필자가 보기엔 무문관 수행이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생활관의 생활은 시설이나 직원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반드시 지키시는 모범을 보이셨다.


2. 효심이 가득한 모습
원기96년 5월, 아버님 상산종사께서 열반에 드셨다. 장의위원회로 부터 염산정사의 참석여부를 묻는 소식이 전해 왔다. 조문을 권유하는 필자의 질문에 “우리 아버님은 나의 아버님만이 아니라 교도 전체의 아버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굳이 안가도 되네. 발인식 끝나고 날 잡아 영모묘원으로 가겠네. 그 때 자네가 데려다 주소.” 그 말을 하는데 염산정사의 눈가에 따뜻한 물방울이 흘렀다. 그 후 날을 잡아 인사를 올렸고 매년 2차례씩 아버님을 찾아뵙는 효심을 보여주었다.


3. 대열반상을 나투심
지난 1월 23일 삼정원 저녁식사 시간. 염산정사는 편안한 모습으로 조용히 식사를 마친다. 수백 명이 함께 식사하고 직원들도 식사관리에 여념이 없다. 약간 남긴 잔 밥을 잔 밥통에 털어 넣고 빈 식판을 직원에게 넘겨준다. 갑자기 얼굴이 창백해졌다. 옆에 서 있던 여직원이 놀라 남직원을 부르고 직원의 품에 안겨 바닥에 누워졌다. 심폐소생의 응급처치가 진행된다. 10분 후 119대원들이 도착한다. 몇 분 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자 원광대학병원 응급실로 호송된다. 의사의 판단이 사망으로 진단되었다.

이는 당시의 상황이다. 사회복지시설의 입소인의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시설의 매뉴얼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다. 현장에 있었던 필자는 그 순간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좌탈입망’이라는 단어다. 앉아서 죽고 서서 죽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죽음을 초월한 초인들의 죽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이다. 생사를 초월한 영원한 대자유인의 모습이라고 표현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염산정사는 식판을 직원의 손에 건네고 열반에 들었다고 필자는 판단된다. 지식에 되니 당연히 얼굴은 창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이지만 염산정사의 열반은 소리 없는 미풍이 나뭇잎을 흔들게 하듯이 지금도 필자의 뇌를 자극하고 있다. 소리 없이 흔적 없이 다녀간 한 수행자의 거룩한 모습으로.

/삼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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