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했다는 상 없애기에도 바쁜 인생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최준명 종사의 원불교신문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이다. 거진출진으로서 신앙과 수행을 일관해 온 무상(無相)의 심법이 묻어나는 말로, 재가출가 전 교도가 신앙과 수행의 표준으로 삼아야 할 핵심적인 한 마디라 할 수 있다. 『정산종사법어』근실편 6장에서는 “교만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외식이 많으면 진실을 잃나니, 사람을 잃으면 세상을 버림이요 진실을 잃으면 자기를 버림이라”라고 했다. 교만이란 다른 사람에게 잘난 체하는 건방진 태도를 말하고, 외식이란 겉으로만 보기 좋게 꾸며내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만(慢), 과만(過慢), 만과만(慢過慢), 아만(我慢), 증상만(增上慢), 비만(卑慢), 사만(邪慢)의 칠만(七慢)으로 말하고, 특히 구사종(俱舍宗)에서는 탐(貪)·진(瞋)·만(慢)을 진리를 미혹하게 하는 번뇌로 꼽으니 교만은 곧 어리석은 마음(癡心)을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교만을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일곱 가지 죄(七罪宗) 가운데 하나로 꼽아 금기하고 있다. 

사람이 잘난 체 하거나 거만한 태도를 가지는 것은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힘·미모·재산·권력·지위 등이 변함없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 힘이나 재산 등이 바로 자신의 모습인 양 착각하는 속에서 끊임없이 상(相)을 내는 것이다. 이처럼 교만은 언젠가 사라질 허망한 것에 의지해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것이라는 점에서 겉으로 과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 꾸미기에 치우친다는 것은 내실을 다지기보다는 실력 없음을 꾸밈으로 덮으려 할 것이니 진실을 잃을 것이다. 또 교만하다는 것은 오직 나만 사랑해 남을 업신여기는 것이니 자신을 업신여기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교만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나라는 상을 내려놔야 한다. 그래야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알고, 상대방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된다는 마음으로 불공을 할 수 있다. 교만하지 않는 방법으로 겸손을 말하나, 사실 ‘불공’이 더 적극적으로 교만한 마음에서 멀어지는 길이다. 또 세상을 향해 쉼 없이 불공해 가는 것이 바로 안으로 실력을 기르는 길이요, 자신의 실상(實相)을 드러내는 진실한 삶이 된다. 

수심결에서는 ‘무상(無常)이 신속하여 몸은 아침 이슬과 같고 목숨은 서산에 걸린 해와 같다’라고 했다. 요즘은 100세 인생이라 하나 교만과 허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들 어찌 실다운 삶이라할 것인가. 상 없애기에 바쁜 인생. 한 생을 통해 오로지 이 공부로만 일관해도 일상을 통해 큰 행복을 얻고 큰 불도의 성취를 이룰 것이요, 무상의 심법으로 서로서로 불공하는 불보살이 넘쳐나는 낙원의 도량을 만들 때 대종사의 정법회상은 완성될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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