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안 교무
김명안 교무

[원불교신문=김명안 교무] 일요일 법회 보기 1시간 전. 오늘은 몇 명의 아이들이 올까 생각하며 소법당에 방석을 놓는다. 처음엔 자신있게 10장하고 옆에 몇 장 더 쌓아놓았다. 그러다가 점점 자신감 없어지면서 여유로 쌓아뒀던 방석이 사라지고 방석 개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방석이 더는 줄지 않기를 바라며 떨리는 마음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방석을 놓는다.

법회 후 삼삼오오 모여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어린이·청소년 교화의 빙하기가 언제쯤 해빙이 될까 긴 한숨이 쉬어질 때가 있다. 동시집에서 “꽃샘추위”(유강희)라는 시를 읽었다. “…꽃들이 너희들도  한번/ 꽃향기에 취해보라고/ 추위를 초대한 거야// 얇은 잎이 찢겨지고/ 줄기가 갈라지는 것도/ 까마득 모르고 말야//꽃들이 반갑게 추위를 껴안은 거라고//.”

해맑게 웃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삶은 가쁘게 숨쉬며 사는 날들이 더 많다는 것을 말해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막연한 희망이 오히려 상처와 실패를 딛고 서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걱정없이 즐거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교당에서 초등학교4학년 때 급작스럽게 아버지와 사별한 아이, 다문화가족의 아이들, 부모님의 자리에서 조부모님이 키우고 있는 아이들 등을 만났다. 아이들 각자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다들 너무 어리지만 어리다고 힘겨운 순간이 비껴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며 자라는 내내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있는 일이 별로 없음을 알았다. 배고파하면 따뜻하게 밥 한끼 챙겨주고 세상이 무너질 듯한 얼굴로 스마트 폰게임에 몰입하고 있을 때 조용히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며 일주일에 한번 있는 법회와 수요일 공부방에 어찌 지내는지 출석체크로 아이들이 잘 있는지 확인해 나갔다. 매해 훈련도 빠짐없이 했다.

토요일마다 교당 가까이에 홀로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반찬나르는 것을 도왔다. 독경연습을 열심히 해서 받은 상금과 봉사활동으로 받은 상금을 아프리카어린이들에게, 중국의 어려운 교당에 보내자는 자발적인 의견을 냈고 또 그렇게 했다. 

다람쥐처럼 시도때도 없이 교당을 드나드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귀찮기도 하고 때로는 교도님들에게 폐가 될까 걱정도 됐지만 오히려 많은 교도들이 아이들을 사랑해 주고 관심을 줬다. 나 역시도 잔소리 안하려고 노력하는 엄마연습을 하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은 원불교의 따뜻한 품안에서 보이지 않게 자랐다. 그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뎌만 주어도 아이들은 추위를 반갑게 맞이하는 꽃들처럼 고통을 감수하며 세상에 향기를 뿌리며 살아갈 것이다. 추위를 껴안은 자랑스러운 상처는 더 깊고 그윽한 향기를 남길 것이다. 

아직도 어린이·청소년 교화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하지만 이 교당이, 대종사의 가르침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들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을 살아가게 하는 마음의 고향으로 아이들이 꽃처럼 다가와서 추위를 물러가게 한다. 세상의 모든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몰입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철현:심연) 

자신에게 몰입한 한 명 한 명의 꽃이 피어주니 겨울이 가는 건 아닐까? 추위를 꼭 껴안아 무장해제 시키는 아이들의 웃음꽃에서 봄은 기어이 올 것이고 나는 이 꽃들을 열정적으로 사랑해 볼 용기를 다시 내어본다. 

/교동교당

[2020년 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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