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광 교무

[원불교신문=박도광 교무] 인류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강자·약자의 대립적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 데에 기인해왔다. 19세기 유럽의 ‘근대화’는 기존의 가치관뿐 아니라 사회 중심축 변동을 일으켰다. 정치적으로는 왕권 중심의 전제주의에서 입헌제도와 대의제도에 의한 권력분립이 이뤄졌다.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는 시민사회로 자유와 인권이 신장됐다.

유럽의 막대한 자본 축적은 문화의 르네상스기를 맞았으며 군사적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됐다. 또한 ‘유럽=근대화=문명국가’로 설정하고,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의 지역을 ‘미지의 세계=야만=비근대’란 도식을 만들어 ‘세계 문명화’라는 명분으로 침략과 식민지건설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서구식 근대화’를 추구한 일본은 ‘일본=서양=문명’ 대 ‘중국·한국=야만’으로 설정해 한국을 비롯한 중국·아시아에 대한 침략의 정당성 및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추구했다. 세계의 강대국들은 약소국에 대한 침략, 경제적 수탈, 살상과 인권유린을 세계 곳곳에서 자행했다. 

일제강점기 탄압받던 시기, 소태산 대종사의 ‘강자약자진화상요법(强者弱者進化上要法)’에 대한 가르침은 약소민족으로서 식민지 생활을 면치 못하는 민중들에게 희망의 문명사회를 제시했다. 특히, 1928년 2월 서울 이공주 자택에 모인 여성들에게 가르친 ‘약자로 강자되는 법문’(『월말통신』제1호)은 약자인 갑동리(甲洞里)와 강자인 을동리(乙洞里)에 대한 비유를 들어 세계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무모한 강자가 “…약자를 업수이만 여겨 차차 을동리 사람들이 갑동리로 와서 여러 가지 수단으로 둘러도 먹고 전곡(錢穀)재산도 빼앗으며 토지(土地) 전답(田畓)도 저희가 받아먹고도 유위(猶爲) 부족하야 무식자(無識者)니 미개자(未開者)니 야만인(野蠻人)이니 하고 가진 학대”를 하면서 ‘문서없는 노예’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예리하게 직관해 제국주의 열강의 약소국에 대한 부당한 침략과 식민수탈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 무모한 강자가 약자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의 진시황, 독일의 카이저 등을 예로 들기도 했다. 또한 어느 여름철 변산 제법성지를 방문했을 때, 비가 온 뒤에 물웅덩이에 놀고 있는 올챙이들을 보면서 “현재의 강(强)을 남용만 하는 사람들”은 마치 마른 못에 언제 죽을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올챙이’와 같다고 했다.

소태산 대종사는 ‘최초법어’에서 강자와 약자의 대립적 구도를 벗어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조화로운 상생의 관계를 설정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약자가 강자가 되려면 강자가 어떻게 강자가 됐는지를 배우고 또한 약자는 경제자립, 교육의 필요성, 단결력과 공공심을 통해 전체적인 힘을 기를 때에 강자가 될 수 있음을 밝혀 줬다. 또한 강자는 약자에게 자리이타 법을 써서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킬 때에 영원한 강자가 되고, 약자는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어떠한 천신만고가 있다 해 꾸준히 진보해 나갈 때 강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오늘날 지구촌 시대에 패권적 종속주의와 탐욕적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만연하고 있다. 

새로운 식민지 형태의 종속화가 이뤄지고 있다. 강대국 간 문명충돌의 대립적 구도와 강대국 중심의 왜곡된 문명 세계관을 넘어설 중요한 가르침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2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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