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광 교무

[원불교신문=박도광 교무]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종교 간 대화협력의 모임은 1893년 시카고박람회 기간에 열린 세계종교의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s)였다. 1993년 인도 뱅갈로와 미국 시카고에서 두 번에 걸쳐 1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필자는 인도 뱅갈로와 호주 멜버른 회의 참석한 후 2018년 11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7차 세계종교의회 총회에 참석했다. 약 8000여 명 이상이 모였다. 이때,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종교의 역할에 대한 세미나를 주최해 참석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개막 전야제에서 주최측은 초창기 1893년 모임에 참여한 각국의 인물 사진을 역사를 회고하듯 보여줬다. 흥미롭게 보던 가운데, 갓을 쓴 사람의 사진이 나타났다. 조선 후기 갓을 쓴 사람의 사진이라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 시카고박람회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고종실록』에 고종이 1893년 조선 개국(開國) 502년 정월에 “정경원(鄭敬源)을 미국박람회 출품사무대원에 임명”한 기록을 찾았다. (『고종실록』 30권, 고종 30년 음력1월 24일) 고종은 참의원 내무부사 정경원을 책임자로 해 관리, 통역, 국악인 등 13명을 파견했다.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제물포를 출발해 30여 일의 긴 여정으로 개막 3일 전인 4월 28일에 시카고에 도착했다. 콜롬버스의 미국대륙발견 4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시카고박람회는 5월 1일 개막해 10월 30일까지 개최됐다. 박람회 기간에 한국전시관을 나무로 집을 짓고 지붕에 구운 기와를 올린 한옥양식의 6, 7칸의 제법 큰 공간을 만들었다. 가마, 찬장, 식기, 짚신과 가죽신발, 화로, 자수병풍, 조총, 관복과 무인복, 악기 등의 물품을 전시했으며,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시카고박람회에서 돌아온 정경원이 고종에게 보고하는 내용에서 당시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간추려서 소개하면, 고종이 “미국의 물색(物色)은 얼마나 장관이던가?”하니, 정경원이 “매우 번창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우리나라의 물품을 보고 어떻다고 하던가?”라고 묻자 정경원은 “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물품을 처음 보기 때문에 구경하는 사람이 번잡하게 모여들어 미처 응대할 겨를이 없었습니다”라고 해 조선전시관이 무척 붐볐던 상황을 설명했다.

고종이 시카고세계박람회에 대표단을 보낸 까닭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 당시 국제사회에 조선이 독립국가임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조선의 대표단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물을 전시하는 동시에 ‘대조선’이라는 한글 국호를 사용해 9월 18일 각국 대표단을 초청했다. 약 1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이와 관련한 일부 사진과 초청장 등의 기록들이 남아있다.

둘째, 한국문화를 알리는 물품을 전시하고 전통음악 연주를 통해 고유한 한국문화를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알리는 문화교류의 원조가 됐다. 동행한 9명의 장악원(掌樂院) 국악연주단 일행은 5월 1일 개막식에 22대·24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클리블랜드가 조선전시관을 지나갈 때 풍악을 울렸으며, 당시 시카고 현지신문(The Chicago Evening Journal)은 우리의 전통음악 연주에 대해 매우 독특하고 흥미롭다고 소개했다. 시카고박람회는 세계 종교인들이 함께 참여하고,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처음 공식적으로 공유한 역사적인 모임이었다.

[2020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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