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신언서판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원래 당나라 때 과거시험에서 관리를 선발하는 기준이 됐던 것으로, 신은 풍채가 건강한 것을 말하고 언은 언사가 분명하고 바른 것을 말하며 서는 필치가 힘이 있고 아름다운 것을 말하고 판은 글의 이치가 뛰어난 것 곧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아는 판단력을 말한다. 

『정산종사법어』근실편 11장에서는 “옛 말에 신언서판이라 하여 풍채와 언변과 문장과 판단으로 사람의 인격을 논한다 하였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판단이며,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사람의 마음이니라”라고 했다. 신언서판 중에서도 판단력이 가장 중요하나,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는 것이다.

신언서판은 사람의 인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의 근거다. 그러므로 네 가지를 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고루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정산종사는 그 가운데에서 판단을 가장 중시했다. 왜일까? 사람이 어떠한 일에 판단을 한다는 것은 그 일의 가치를 결정하는 행위가 된다.

기업이나 조직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가치관을 중시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 판단으로 연결되어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조직이나 사회에 긍정 또는 부정의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특히 대기업의 총수나 전쟁터의 사령관, 한 나라의 대통령 등 거대 조직을 운영하는 리더의 경우, 그 한 사람의 판단이 조직원이나 국가의 사활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대중은 늘 그러한 사람의 말과 글 등 드러나는 모습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곧 몸과 말과 글은 결국 그 사람의 가치관이 판단이라는 결정에 의해 드러나는 결과물이다.

분뇨를 비단으로 덮어두어도 그 냄새가 배어나오듯이, 가치관이 그릇된 사람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꾸밀 수는 있으나 결국 그 본질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사람의 인격 중 판단력을 가장 중시한 것은 이것이 신언서판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산종사는 판단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했다. 이 또한 마음이 모든 가치관과 판단의 근본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칠흑 같은 밤 토굴에서 목마름에 달게 마셨던 물이 사실 해골에 괴인 썩은 물임을 알고 모두 토해냈다는 원효대사의 일화를 알고 있다. 저녁에는 행복과 시원함을 줬던 물이 왜 아침에는 구역질나는 더러운 물이 되었을까? 물을 대하는 원효의 마음이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종사는 경계를 따라 일어나는 ‘내 마음’을 바로 세우라고 했다. 

선과 악, 좋고 나쁨의 판단과 거기서 나타나는 고락이 모두 나의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과, 그런 원인이 상대방 또는 경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가치관과 판단, 나아가 행동과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부처와 중생의 차이가 바로 이 한 마음에 달려 있음을 알아야 한다.

[2020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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