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일원상서원문’의 핵심대목 중 하나는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기로써”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능히 유상하고 능히 무상하여, 무상한 무량세계로 보면 혹은 진급으로 혹은 강급으로 혹은 은생어해로 혹은 해생어은으로 변화하며, 유상한 무량세계로 보면 진급할 것도 강급할 것도 없는 여여자연한 자리이며 은혜와 해독으로 파도치는 변동이 없는 상주불멸한 자리이다. 즉 상주불멸로 여여자연한 유상자리에 바탕해 진급과 은혜의 길에 들어서자는 것으로, 만일 유상자리에 기반해 변화자재하는 무상세계를 모르면 변화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되어 결국 강급이 되고 해독을 입는 고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강급이 본래 없는 유상으로 진급은 될지언정 강급은 되지 않는 무상세계를 전개하자는 것이며, 은혜와 해독이 본래 없는 유상으로 은혜는 입을지언정 해독은 입지 않는 무상세계를 전개하자는 것이다. 

즉 진·강급이 본래 없는 자리에 바탕해 진급해 가자는 것이며, 은혜와 해독이 본래 없는 자리에 바탕해 영원히 은혜를 짓고 받자는 것이다. 또한 진급이 되고 은혜를 입을지라도 진급할 것도 은혜 입었다 할 것도 없는 유상자리에 바탕해 진급과 은혜의 낙에 빠지지 않고, 또는 강급이 되고 해독을 입는다 하여도 강급되고 해독을 입는 고에 종속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원한 진급의 길과 은혜의 길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이와 같이 능이성 유상하고 능이성 무상한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아서 심신을 원만하게 수호하고 사리를 원만하게 알고 심신을 원만하게 사용하는 공부를 지성으로 하면 진급과 은혜의 길로 나아가고, 반대로 이러한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지 못하면 강급과 해독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원상을 체받는 것은 본래 향상할 것이 없는 유상한 자리에 바탕해 끝없이 향상심으로 살아가는 진급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요, 은혜와 해독이 본래 없는 유상한 자리에 바탕하여 항상 보은으로 나아가는 은혜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다. 

결국 일원상을 체받아서 드러내면 선순환의 진급이요 일원상을 잃어버렸으면 악순환의 강급이며, 일원상을 체받아서 발현하면 정당한 고락의 은혜요 일원상을 가리면 부정당한 고락의 해독인 것이다. 법신불 일원상을 체받는 것은 유상한 자리와 무상한 자리를 동시에 드러내는 것으로, 일원상을 체받아서 다할 것이 본래 없는 유상자리에서 변화무궁한 무상자리까지 잘 운용하라는 것이다. 즉 유상한 자리에 바탕해 진급이 되고 은혜 입는 길에 들어서라는 것이다. 

세상은 변화하기에 묵은 세상의 끝이 있으면 새 세상의 처음이 열리는 것이다. (『대종경』 전망품 19장) 소태산 대종사는 미래 세상은 크게 문명한 도덕 세계가 되리라 전망했는데, 이러한 전망은 이 세상을 유상한 자리에 바탕해 진급이 되고 은혜는 입을지언정 강급이 되고 해독은 입지 아니하는 세상으로 개척하라는 의지요 서원인 것이다.

[2020년 3월 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