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은 공동체의 존립 위해 합의해 결정한 것일 뿐
“선(善)이다”, “악(惡)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 되지 못해
원불교 관점에서 볼 때, 태아는 이미 그 자체로 오롯한 하나의 생명

[원불교신문=최덕문 교무] “잘못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동의할만한 명제이다. 직관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 즉, 어떠한 것이 ‘잘못’인지, ‘벌’은 무엇인지에 관해 100명에게 물어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이 또 다른 개인에게 하는 복수는 동일할 수 없고, 정형화될 수 없다. 개인적인 복수를 정당화한다면, 사회구성원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국가(원래 부족이었던)를 통해 복수 하거나 또는 국가가 대신해서 ‘처벌’이라 불리는 복수를 수행해 줘야 개인과 공동체가 존립할 수 있다. 단, 처벌(응보)은 범죄 예방을 위한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특히나 무거운 형벌이 범죄의 예방에 적절할 것이라는 생각은 많은 연구를 통해 오답임이 밝혀졌다. ‘형벌’ 중에서 범죄 예방에 가장 영향을 주는 요소는 ‘확실한 처벌’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과연 대한민국의 형법에서 낙태죄와 그 처벌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형법에서 낙태죄의 형성
국민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법률’에서 어떤 행위를 어떻게 처벌할지 미리 정하고 있어야 한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한다. 1947년 조직된 법제편찬위원회에서 형법초안을 작성할 때 낙태죄를 폐지해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논의한 끝에 일단 초안의 제287조에 낙태죄를 규정해 놓고, 국회에서 심의하기로 해 다음과 같이 원안을 작성했다.
 

제287조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1953년 국회에서는 “낙태죄가 봉건적인 규정이다”라는 의견을 시작으로 낙태죄의 존치 및 삭제에 관해 모체 안에 있는 아이를 모체의 일부분으로 볼 것인지, 한 인격의 개별적인 부합체(附合體)로 볼 것인지 등 다양한 관점이 제기됐고 상당한 토론이 있었다. 토론 내용을 요약해보면 낙태죄존치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① 인구정책적 고려 : 인구의 증가를 위한 목적으로 ② 성풍속의 유지 : 우리나라에 있던 도덕관념이나 국민의 풍기와 보건을 위해서 ③ 태아의 생명권 등을 논거로 제기했다.
낙태죄폐지론을 주장하는 의원들은 ① 인구증가에 대한 규제장치 ②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지위개선 : 아이를 낳으면 생활고 등에 시달리거나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 ③ 여성의 자기결정권 ④ 파생범죄나 불법시술로 인한 위험성 발생 우려 등을 이유로 낙태죄의 폐지를 주장했다. 격렬한 논쟁 후 낙태죄삭제안이 재석원수 107인 중 가 27인 부 2인으로 부결돼 폐기되고 낙태죄가 포함돼있는 원안이 채택돼, 제정형법에 낙태죄가 명시됐다. 

 

낙태죄 처벌 현황
이후 1973년 모자보건법의 제정 및 시행에 따라 ① 본인 또는 배우자가 특정한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질환이 있는 경우 ② 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③ 혼인할 수 없는 혈족 간에 임신된 경우 ④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허용했으나, 그에 해당하지 않는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고 처벌됐다.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일 년에 몇 건이나 낙태죄로 수사를 받고 재판을 받았을까? 보건복지가족부에서는 2005년 한국에서 벌어진 낙태행위가 35만 건 정도, 그중 기혼여성은 20만 미혼여성은 15만 건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에 비춰 볼 때 우리나라에서 매년 행해진 낙태행위가 얼마나 될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 낙태죄에 관한 재판은 1970년부터 1988년까지 합해서 96건에 불과하다. 사실상 낙태죄는 사문화(死文化)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학계에서는 “무의미한 조문으로 인하여 법의 권위가 실추된다”라는 비판도 있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가끔 일어나던 낙태죄 재판이 2010년부터 갑자기 눈에 띄게 많아지게 된다. 바로, ‘프로라이프의사회’라는 단체가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 의사를 고발함에 따른 변화였다. ‘낙태죄’를 호수에 비유해보면 물밑에는 많은 물고기와 수초들이 있을 뿐 아니라 소용돌이가 치고 있지만 겉보기에는 잔잔한 수면이었는데,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던진 돌이 잔잔했던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파장이 불러온 결과일까? 그렇다면 돌을 던진 사람이 원하지 않았던 결과일지도 모른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라는, 그러니까 2021년 이전에 개정하라는 의미를 가진 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라 낙태죄에 대한 수사와 재판은 사실상 이미 종료됐으며, 곧 ‘낙태죄’라는 단어를 법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낙태를 바라보는 교리적 관점
낙태죄가 폐지되고 우리나라에서 낙태행위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게 됐으면, 낙태는 더 이상 ‘잘못’이 아닌걸까? 글의 서두에 서술한 것처럼 ‘처벌’은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합의해 결정한 것일 뿐 “선(善)이다”, “악(惡)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대산종사법어 제12 거래편 제24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낙태는 본능적으로 의지하려고 하는 태아의 생명을 끊는 것이므로 살생과 다름이 없나니, 태아로 인해 산모가 생명을 위협받는다든가 할 경우에는 부득이 심고와 기도를 올리고 가족회의와 법적인 절차를 밟아 처리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요 원칙은 아니니라. 뱃속에서 천심으로 자라나는 생명을 죽이는 것은 보통의 살생보다 더 큰 죄가 되느니라.”
원불교 교리적 관점에서 볼 때, 태아는 이미 그 자체로 오롯한 하나의 생명이다.

 

■ 최덕문 교무
ㆍ일원법률사무소 변호사
ㆍ원불교 수위단회 총무 법제상임위원회 전문위원


[2020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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