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몇 개의 약속이 취소되고, 다음에 상황이 좋아지면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들이 늘었다. 겨울 방학내 고민하며 수정하고 또 수정한 2020학년도 학사일정은 처음부터 새 판을 짜야 한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고 중요한 약속이 아니면 굳이 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계획할 때도 괜히 위축되고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마음이 앞선다. 

소소한 일상의 변화라 여기기엔 생각보다 크게 바뀐 일상은 두렵기만 하다. 불확실성이 주는 위기감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대종사는 사람이 아무리 죽을 경우를 당할지라도 정신을 수습하여, 옛날 지은 죄를 뉘우치고 앞날의 선업을 맹세한다면, 천력(天力)을 빌어서 살길이 열리기도 하는 것이니, 위기상황에 더욱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대종경 선외록 에서는 특별한 신통을 얻어서 이산 도수와 호풍환우를 마음대로 해야 큰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자, 경전 강연 회화도 다 쓸데없고 그저 염불 좌선만 해야 정력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자 등 저의 사견에 집착하는 자는 나를 만났지마는 나의 얼굴도 보지 못한 자라고 했다. 

수행은 바람을 불리고 산을 옮기는 마법 같은 힘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을 헤쳐나갈 지혜를 얻는 것이다. 어려움을 만나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험한 파도를 넘어 바른 방향으로 항해할 힘을 기르는 것이다. 지금 이 어려운 시기를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이 순간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선택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으려는 내공을 키우는 기회로 삼아보자. 

더불어 연대를 잊지 말자. 연대(連帶)란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하며, 한 덩어리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마음의 연대 저자 이승욱은 마음의 연대는 공감에 기초한다기보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으로 함께하는 쪽이 더 솔직하고 직접적이라고 한다. 분노와 우울, 열등감 또는 무기력을 경험한 것은 누가 누구를 공감하고 공감받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우리 모두가 같은 처지이며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자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이런 평등한 정서적 상호 호환이 일어날 때 정서적 연대의 가장 튼튼한 토대가 마련된다고 한다. 

대종사의 법문처럼 엄동설한에 모든 생령이 음울한 공기 속에서 갖은 고통을 받다가 동남풍의 훈훈한 기운을 만나서 일제히 소생함과 같이 공포에 싸인 생령이 안심을 얻고, 원망에 싸인 생령이 감사를 얻고, 상극(相克)에 싸인 생령이 상생을 얻고, 죄고에 얽힌 생령이 해탈을 얻고, 타락에 처한 생령이 갱생을 얻어서 가정·사회·국가·세계 어느 곳에든지 당하는 곳마다 화하게 된다면 그 얼마나 거룩하고 장한 일이겠는가. 대종사 본의에 바탕한 탄탄한 수행과 깊은 연대가 절실한 때이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3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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