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자기 안의 이야기를 술술 꺼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상처가 깊은 사람일수록 마음 깊은 곳에 이야기를 꺼내놓기 어려워한다. 너무 오래 문을 닫아놓고, 지나치게 꾹꾹 눌러놓아서 어떻게 꺼내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작은 사물이나, 사진을 활용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가령 학기 초 학생들과 어색한 첫 만남의 시간 다양한 사진이 있는 프라임 카드를 교실 바닥에 펼쳐두고, 나를 소개할 때 가장 적합한 사진을 고르게 한다. 왜 그 사진을 골랐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지, 사진으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던 아이들의 속내를 들을 수 있다. 성격, 가족 이야기, 고민 등 작은 사진 하나가 펼쳐놓는 이야기는 파노라마가 된다. 모녀 힐링캠프 속 엄마들의 모둠 상담 때도 사진카드는 유용하다. 모둠 상담 문 열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나열된 사진 중 연상되는 사진 하나를 고른다. 딸을 처음 품에 안아서 행복했던 첫 기억을 비롯해 기쁨을 주던 딸의 모습, 현재 서먹한 딸과의 관계 그리고 내밀한 고민까지 이야기한다. 작은 사진은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머뭇거리던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한다. 

마음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아니면 성취해야 할 과업이든 너무 크게 생각하고 너무 막연하게 생각해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작은 것에서 시작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가 풀릴 때가 의외로 많다. 

‘업글 인간’, 트렌드 코리아 2020이 선정한 ‘2020년을 이끌 10대 키워드’ 중 하나이다. 단순한 성공이 아닌 성장을 추구하는 자기 계발형 인간들을 이르는 말로, ‘업글’은 ‘업그레이드’의 준말이다. 업글 인간은 타인과 경쟁해 승리하기보다는, 삶 전체의 질적 변화를 추구하고 어제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나가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성공’이 아닌 ‘성장’이며, ‘남들보다 나은 나’가 아닌 ‘어제의 나보다 나은 나’이다. 매 순간 업그레이드되고 진급하는 것 역시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굳은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생활 속 작은 습관이다. 탁월한 자기 관리는 사소한 것에서 비롯됨을, 하지만 탁월함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님을 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이 작은 데로부터 커진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한 대종사의 말씀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일이든, 무언가 배우는 일이든 작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해야 마음이 움직인다는 진리를 확인할 때가 많다. 사업을 할 때나 공부할 때, 급속한 마음을 두지 말고 순서를 밟아 진행해야 하고 허영심이나 욕속심을 주의해야 하며, 모든 일은 작은 것에서 시작해 큰일을 이루는 이소성대의 원칙으로 진행된다는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겠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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