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대종사는 『불교정전』을 편찬한 후 ‘때가 급하여 이제 만전을 다하지는 못하였으나, 나의 일생 포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나니 삼가 받아 가져서 말로 배우고 몸으로 실행하고 마음으로 증득하여 이 법이 후세 만대에 길이 전하게 하라’라고 했다. 

원기45년(1960)『불교정전』을 재편할 당시 수위단회에서 강조한 것은 대종사의 ‘만전을 다하지는 못하였다’라는 부분으로, ① 대종사의 일대 사업이 조선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범위가 결코 어떤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닌데 조선불교나 조선사회의 개선에만 주안을 둔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으며, ② 대종사의 새 종교가 불교를 주체삼아 세워졌으나 그 판국이 결코 한 교회에 국한된 것은 아닌데 오직 불교만을 개선하고 통일하자는데 그친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는 점이었다. 조선불교의 국한을 벗어나 세계와 인류의 교화를 지향한 대종사의 본래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정전』재편의 취지로, 원불교가 ‘불교를 주체’로 한다는 정신에 변함은 없었다.

그런데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불교재산관리법’을 공포했고, 원불교는 전통불교와 동일하게 모든 재산을 국가에 등록하고 통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스스로 불교가 아닌 신흥종교임을 선언했다. 국가의 종교통제와 억압의 과정에서 원불교는 반강제적으로 종교 정체성의 변화를 요구받은 것이다. 이후 한국사회와 학계에서 원불교는 신흥종교 또는 민족종교로 인식됐고, 불교를 주체로 한다는 의미는 퇴색해 갔다. 1992년 수위단회에서는 ‘원불교는 새 종교요 새 불교’라는 선언으로 본래의 불교 정체성 회복을 꾀하지만, 한국사회와 원불교 대중의 인식에서 원불교는 이미 불교와 다른 종교로 받아들여져 왔고, 현재 원불교는 국내에서는 ‘민족종교’, 해외에서는 ‘불교’라는 이중성을 가진 종교가 되어버렸다. 

물론 원불교는 조계종과 같은 불교의 한 종파가 아니다. 원불교는 말법의 시대를 끝낼 새로운 정법회상으로서 과거 불교의 종파를 초월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원불교는 결코 ‘민족종교’도 아니다. ‘불교를 주체’로 해 세계종교와 인류 구제를 지향했던 대종사의 본래정신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18장에서는 미륵불 세상이 곧 근실한 세상을 이름이니, 종교도 그 교리가 사실에 맞고 자력을 주로 하는 종교라야 세상에 서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불법을 주체로 원불교인의 신앙과 수행이 바로서고 불법을 주체로 한 정전의 내용이 생활 속에서 충실하게 실천될 때 원불교는 비로소 자력을 주로 하는 종교로 세상에 우뚝 설 수 있지 않을까. 민족종교로 만족할 것인지, 불교를 주체로 세계의 종교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우리는 서 있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3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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