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응준 교무] 만가는 우리나라 민요의 한 형식이다. 상여꾼이 상여를 메고 갈 때 부르는 노래로, 매장할 때 흙을 다지면서 부르기도 한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노래나 가사로 되어 있는데, 『성가』를 통해서 예전의 시대상을 엿볼 수도 있는 곡이다. 

요즘은 상여를 메고 곡을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과거에는 이러한 장례문화가 흔하게 있었다. 음악이나 예술문화는 종교적인 의도나 어떤 특징적인 모습을 목적하고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그 시대가 지닌 문화와 의식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원불교의 성가와 의식도 이런 장르의 성가를 보면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성가들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상황이나 흐름을 지니고 음악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한 시대에 성행했던 문화나 음악들은 그 내포함이 더 짙다고 하겠다.

 ‘어이어이 서러워라 그대 이 웬일인가 그대 이 웬일인가’가 계속 반복되면서 중간에 가사가 바뀌는데, 이러한 곡을 응창형식이라 한다. 이 곡을 원불교 성가에서 나온 곡이라고 말하지 않고 일반 대중에게 들려준다면 너무도 슬픈 그리고 한스러운 이별 노래로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불교의 창립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교도라면 그 슬픔의 한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창생을 위해 한 몸 바치겠다는 오직 한 가지 목표, 성불제중 제생의세를 위해서 혼신을 다하다 먼저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도반을 보내는 마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받는 부분을 감정의 정화작용이라 한다. 기쁜 희망의 노래를 통해서 일어나는 정화의 힘도 크지만, 슬픔의 감정을 통해서 회고와 반성을 통한 정화작용은 더 간절하게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만가를 부르면서 세상과의 어떤 이별을 준비하고 살고 있나 하는 점을 떠올려 보자.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이렇게 슬퍼하고 안타까워 해 줄 뜻을 함께한 도반을 떠올려 보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먼저 이 회상의 그러한 인물이 되어줄 수 있는 마음을 느껴보자.

[2020년 3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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