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힐링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항상 위태로워
신앙·수행·신성·공부심을 통해 얻은 힐링이 진정한 힐링
진정한 내려놓음의 킬링으로 공부가 한단계 성장하길

박세훈 교무

[원불교신문=박세훈 교무] 청년 마음 통계라고 들어 보셨나요? 청년들을 위한 상담소인 ‘좀 놀아본 언니들’이란 비영리 단체에서 ‘청년 마음 통계’라는 것을 발표 했습니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청년들의 마음속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나만 뒤처져 있는 것 같다’라고 합니다. 가장 뒤처짐을 느끼는 분야가 ‘취업’이고, 가장 뒤처짐을 만들어 내는 원인들이 ‘비교’와 ‘나이 및 사회적 압박’이었습니다.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많은 청년들에게 무엇을 전해 줘야 그들에게 힘이 될 것인가 고민해 봤습니다.


우리는 혹시 온실 속의 힐링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여러분들이 원불교에 찾아오는 가장 큰 이유는 ‘힐링’을 얻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설교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마음의 편안함과 안정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교당에서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힐링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에만 그쳐버리면 진정한 힐링을 얻지 못하고 작은 경계에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힘이 없는 힐링은 위태롭고, 포장되어 있고, 일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힐링은 좋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상처 주지 않고,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온실속의 힐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다보면 다양한 경계와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성직자들이 모인 곳에도 질투가 있고 시기도 있습니다. 처음에 오면 좋은 면만 보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차차 싫어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못 마땅한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에 힘이 있으면 이런 것들이 배움이 되고, 성장의 밑거름이 되지만 마음의 힘이 없으면 경계에 무너지고 교당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형태의 힐링이나 과거에 익숙했던 힐링을 찾게 됩니다. 즉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취미 활동에 몰입하거나, 돈을 더 열심히 버는 것으로 마음공부의 힐링이 대체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장된 힐링’을 넘어서는 ‘진정한 힐링’의 단계로 가야하는데 그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킬링’의 단계를 넘어서야 합니다. 위장된 힐링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항상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불안합니다. 반드시 킬링의 단계로 가야 합니다. 

킬링의 단계로 간 교도님들은 마음의 힘이 생겨서 작은 경계에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교당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찾지만, 온실속의 힐링 단계에 머물러 있는 교도님들은 작은 경계에도 무너져 결국엔 교당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킬링을 해야 합니다.  


‘내려놓음’이 킬링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킬링일까요? 저는 종법사님께서 신년 법문으로 내려주신 ‘신성으로 공부합시다’라는 법문이 킬링을 위한 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등잔불을 끄면 본래 있던 달빛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내 작은 지식·관념·습관·아만심·경험 등을 내려놓으면 그때 비로소 스승님의 말씀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내 본래 마음도 드러납니다. 

많은 교도님들이 저에게 상담을 하러 옵니다. 그리고 저는 제 나름대로 교법에 바탕해서 상담을 해 드리는데 이 때 나타나는 두 가지 반응이 있습니다. 첫 번째 반응은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결국에는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반응은 ‘내 생각과는 다르지만 교무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에는 무엇인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신심과 공부심으로 내 생각을 내려놓고 교무님 말씀대로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킬링 단계로 잘 넘어간 교도님들은 스승님이 ‘하기 싫은 것’을 하라고 해도 실행해보지만 킬링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교도님들은 그것에 이유와 핑계가 생기고, 나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교당이나 스승과 멀어지게 됩니다. 스승의 이야기를 참고만 하는 것이죠. 

킬링이라는 것은 ‘내려놓음’입니다. 여러분들 한번 과거를 생각해보세요. 처음에 교당에 왔을 때 단장과 중앙님들이 잘 챙겨주고, 반갑게 맞아주고,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니 정말 좋았죠? 처음엔 그것을 힐링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내 마음에 거슬리는 것들이 눈에 보이고, 불편한 이야기들을 듣는 순간 여러 가지 마음들이 요동쳤을 것입니다.

킬링을 위해서는 나의 습관, 내가 아는 것, 경험들을 완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처음 왔을 때와 지금 한번 비교해보세요. 얼마나 내려놓았는지. 

여러분들이 킬링을 통해 신성으로 공부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와서도 내 생각 그대로, 과거 습관 그대로, 내 경험 그대로 살 것이면 교당에 온 보람이 없습니다. 내 것을 내려놓고 주변 동지들의 이야기와 교무님 말씀을 진지하게 들어봤으면 합니다. 그래야 온실속의 힐링에서 킬링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때의 킬링은 ‘내려놓음’입니다. 오늘 이 순간에도 한번 내려놓아보고, 단회 때 단원들과 이야기할 때도 내려놓아보세요. ‘나이가 많다’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교당을 오래 다녔다’라는 생각도 내려놓고, ‘예전에 들어서 다 아는 내용이다’라는 생각도 내려놓고, 모두 다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신성과 공부심으로 킬링의 단계를 넘어서면 그때 진정한 힐링이 찾아옵니다

여러분들이 신성과 공부심으로 킬링의 단계를 넘어서면 진정한 힐링이 찾아옵니다. 그 때 찾아오는 힐링이 진정한 힐링입니다. 마음에 힘이 없고, 내 것을 내려놓지 않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힐링은 위장된 힐링입니다. 그러한 힐링은 작은 경계에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것을 내려놓고, 킬링 단계를 거친 힐링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하고, 힘이 있는 힐링이 됩니다. 일반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는 힐링은 일시적이고 조건적인 힐링입니다. 환경과 조건이 바뀌면 사라집니다. 그러나 신앙 수행을 통해 얻은 힐링, 신성과 공부심을 통해 킬링의 과정을 거친 힐링은 진정한 힐링이 됩니다. 

제가 교도님들과 상담을 할 때면 교도님들의 마음 상태를 보면서 상담과 충고를 합니다. 교도님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진심어린 충고를 해 드립니다.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진심어린 충고를 하지 못합니다.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일 만큼의 마음의 힘이 없는 힐링은 주변 사람들의 보호 속에 있는 온실속의 힐링입니다. 온실을 떠나면 힐링이 사라집니다. 따라서 진정한 내려놓음을 통해 킬링의 단계로 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더 높은 수준의 힐링으로 가게 됩니다. 서로 적당히 상처 안 받을 정도의 이야기만 오고간다면 언젠가는 큰 위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올 한해는 신성과 공부심에 바탕한 킬링으로 내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에 민감한지’ 직면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킬링해주는 동지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킬링으로 공부가 한 단계 성장하고 진정한 힐링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안암교당

[2020년 4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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