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작업(作業)이란 안이비설신의의 육근(六根)을 작용하는 것이요, 일을 하는 것이며 또는 그 일이다. 일정한 목적과 계획 아래 하는 일이요, 일터에서 연장이나 기계(機械)를 가지고 하는 일이다. 

취사(取捨)란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것이요, 쓸 것은 쓰고 버릴 것은 버리는 것이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다.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근진상대 업재기중(根塵相對 業在其中)”이다. 즉 ‘육근(六根:眼耳鼻舌身意)이 육진(六塵:色聲香味觸法)을 상대하면 업이 그 가운데 있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업은 일이라는 뜻으로 좋은 일이 됐든 나쁜 일이 됐든 간에 업은 반드시 우리의 눈 귀 코 입 몸 뜻(마음)이 어떤 대상 곧 빛깔 소리 향기 맛 부딪침 경계를 만나서 작용을 함으로써 업이 만들어지는 것이요, 작용이 없을 경우에는 업 그 자체가 만들어질 수 없다. 

옛 사람들은 작업(作業)을 어떻게 말하였는가? 

① 관자·경중정(管子·輕重丁)에 “명령을 내린지 반년이 되자 백성이 이 소식을 듣고 농사(작업)를 놔두고 꼬고 쌓아(양식창고)서 콩과 조를 저장하는 사람이 반이 넘었다” ② 사기·고조본기(史記·高祖本紀)에 “항상 큰 도량이 있었고 가정의 사람으로 생산의 작업은 일삼지 않았다” ③송 사마광(司馬光) 여오승상서(與吳丞相書)에 “사람이 가난과 부자가 없다는 것은 모두 작업의 농사짓는 일을 지나쳤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취사(取捨)를 어떻게 말했는가?

① 한서·가의전(漢書·賈誼傳)에 “임금으로 계획을 세움에 먼저 취사를 살피는 것만 같음이 없는 것이니 취사의 지극(결과)함이 안에서 정해지면 편안하지만 위태로움의 싹은 밖에서 응하는 것이라” ② 한서·왕길전(漢書·王吉傳)에 “세상에서 일컬으기를 ‘왕길이 벼슬을 하게 되니 공우가 관의 먼지를 털으니라’했으니 그들의 나아가고 그침이 같음을 말한 것이라” ③ 여씨춘추·무도(呂氏春秋·誣徒)에 “능히 가르치지 아니한 사람은 의지와 기개가 화합하지 못하는 것이요, 취사가 자주 변함은 진실로 일정한 마음이 없는 것이라”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무릇 작업취사의 목적은 능히 둥근 진리의 바른 자리를 실행하여 이에 일원의 위력을 얻음에 있는 것이라”

송(頌)하기를
육근원유동(六根爰有動) 육근을 이에 움직임이 있으면
제업차중저(諸業此中儲) 모든 업(일)은 이 가운데 저축되네
정사근행축(正事勤行蓄) 바른 일을 부지런히 행하여 쌓으면
공능저세서(功能這世舒) 공덕과 재능 이 세상에 펼쳐지리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4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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