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인생이라는 것이 꼭 잔디밭 같은 거야. 멀리서 볼 때는 깨끗하게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 가서 앉으려고 보면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려운….” 
예비교무 시절, 어느 교무님이 한 말씀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와는 다르게, 가까이에서 보는 잔디밭은 말끔하지도 깨끗하지도 않아서 늘 몇 뼘 크기 앉을 자리를 찾아 서성이게 된다. 멀리서 볼 때는 사람들의 세세 곡절을 알 수 없으나, 가까이 다가가 보면 고통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런 비유로 들려준 것이다. 

감정은 우리 삶에 다채로운 색깔을 준다. 만약 우리 인생을 잔디밭에 비유한다면, 듬성듬성한 잔디 사이로 흙먼지가 드러나고, 패이고, 검불이 붙은 것과 같은, 그 많은 경험과 시련 속에 진한 감정이 섞이지 않을 리 없다. 이렇듯 감정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지만, 사실 낯설고 불편한 감정들은 성가시게 여겨질 때도 많다. 그러나 내가 그런 감정들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는 가의 문제는 생각보다 상당히 중요하다. 소태산 대종사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억지로 없애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희·로·애·락을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을 걸림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을까? 

감정을 유연하게 다루는 것의 기초이자 핵심이 되는 것은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가를 명료하게 아는 것, 즉 감정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다. 누군가 “지금 마음이 어때요?”라고 물으면, 흠칫 당황하거나, 벌어진 상황에 대해 설명하거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갑자기 그런 것을 묻다니, 의외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간혹 얼굴이 몹시 굳어져 있는 사람을 보고, “혹시 무슨 일이 있어요?”라고 물으면 “아니, 나 괜찮은데!”라고 답하기도 한다.

아직 충분히 친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례들은 대개 감정의 강이 얼어있는 것을 의미한다. 감정의 강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대한 민감성은 자연히 떨어진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 상태는 틀림없이 밖으로 드러난다. 주로 말의 내용이 피상적이거나 관념적이고, 딱딱한 태도, 굳은 표정, 과장된 말투나 몸짓과 같이 어떤 식으로든 경직되거나 과장되거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나타나고 그런 에너지가 피어난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어떻게 모를 수 있지?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만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사건이 크건 작건 간에, 너무나도 두렵거나, 부끄럽거나, 억울하거나, 또는 분노하는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두 눈 똑바로 뜨고’ 대면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모르게 내 깊은 의식 속으로 슬그머니 밀쳐두고 싶어진다. 마치 없는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감정을 명확하게 안다는 것은 지금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분명하게 느끼고 바라보면서 그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역량이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신의 감정을 더 잘 수용하고, 잘 표현하며, 불안과 우울이 적고, 다른 부정적인 감정에서도 더 빨리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존감이 높고, 더 감사하며, 스트레스에도 더 잘 대처하게 된다.

내 감정을 명확하게 아는 것은 억누르지 않으면서 감정과 편안하고 자유롭게 함께 할 수 있는 첫 걸음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4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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