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 / 대구교당 봉공회원 박주원·신경원·이여일·김상원
현장에서 확인한 무아봉공의 의미
소방공무원 300인분 식사준비

왼쪽부터 박주원, 신경원, 이여일, 김상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원불교 봉공회 빨간 밥차가 지난 3월 6일~15일, 10일간 대구 달서구 옛 두류정수장에서 119 구급대원 300명을 대상으로 급식지원 봉사활동을 펼쳤다. 대구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코로나19 환자 이송 업무를 위해 전국에서 집결한 구급대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급식 지원이라 선뜻 나서는 단체가 없었다. 어려운 시기에 결단을 내린 원불교 봉공회의 빨간 밥차가 눈길을 끌었고 그 중심에는 대구경북 봉공회원들이 있었다. 10일 동안 총인원 118명, 42명의 봉공회원들이 참가했는데 그 중 3분의 2가 대구교당 봉공회원들이었다. 

갑자기 연락을 받고 다음날부터 바로 300인분의 점심,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했던 봉공회원들의 활약을 들어보기 위해 대구교당을 찾았다. 김상원(70·대구경북교구 봉공회장), 박주원(65·대구교당 봉공회장), 신경원(51·대구교당 봉공회), 이여일(48·대구교당 봉공회) 교도를 대구교당 3층 법당에서 만났다. 이들은 모두 대구교당 여8단 교화단인 이방단원이다. 

김상원 회장은 “대구시내 대부분의 교당에서 적을 땐 1명, 많을 땐 9명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우리만 인터뷰하게 돼 죄송스럽다. 교무님들도 모두 팔을 걷어붙이며 그야말로 대출동이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생전 처음 만난 300인분 음식이 어느 정도 분량인지 가늠이 안돼 국자로 일일이 재봤던 경험도 털어놨다. 따뜻한 상태로 배식하기 위해 세 차례에 나눠 이송하다 보니 국 분량만으로도 대형 찜통 8개가 소요됐다. 

김상원 회장은 급식 실시 하루 전 날, 갑자기 연락받고 고민이 많았다. 당장 내일 점심 식사부터 준비돼야 하는데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대구시 지침이 엄중하던 시기라 봉사자 인원 동원이 걱정이었다. 정 안되면 늘 함께 손발을 맞춰오던 박주원 교도와 둘이서 해결하리라 마음을 비웠다. 그러나 빨간 밥차 조리장의 대구시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그동안 교구 반찬봉사 팀장으로 음식 조리를 늘 해오고 있던 신경원 교도에게 연락했다. 이여일 교도는 남편과 함께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가했다. 

신경원 교도는 “반찬봉사는 10가구 분량이라 300인분과 비교가 안된다. 급한 대로 교당 주방에 조리실을 차려 대형 조리 기구를 사들였고 조기 구이 등을 할 때에는 전기 프라이팬이 복도까지 다 점령했다”라며 처음 이틀 정도 헤맨 후에 점차 정착돼가던 조리실 상황을 설명했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식재료로 급하게 만들어냈던 첫 날 메뉴인 카레덮밥이후 일취월장해 봉공회원들의 손맛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여수 갓김치, 통영 장어, 시금치, 부산어묵 등 전국 각지 교도들이 보내온 식재료와 봉공회원들의 정성이 맞물렸다. 

고등어 김치찜을 하자고 의논이 됐는데 살이 잘 부서지는 고등어의 특성상 300인분이 온전하게 만들어질지가 고민이었다. 젊은 회원인 이여일 교도가 아이디어를 냈다. 김치 잎 한 장 한 장에 고등어 한 도막을 넣어 일일이 싸면 된다고. 그렇게 350개의 고등어 김치찜이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정갈하게 졸여져 구급대원의 식판에 올랐다. 10일간의 원불교 봉공회 급식이 끝나고 이어받은 적십자 회원들은 원불교처럼은 해낼 수 없다고 걱정했다는 후문이다. 

이여일 교도는 “직장일로 매일 참가할 수 없어 마음이 매우 불편했는데 남편과 함께 일손을 보탤 수 있는 일원가족임이 참 감사했다. 첫 날 일을 마치고 너무 힘들어 잠을 못자고 밤을 꼬박 샜다. 매일 참가하신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새벽부터 요리에 한창인 대구경북 봉공회원들.

원불교 봉공회는 고성 산불, 울산 태풍, 포항 지진 등 재난 현장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는 단체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일은 지난 여러 재난 현장과는 다른 특수한 상황이라 아무도 봉사를 권유할 수 없었다. 전체 인원 배치와 매일 활동 결과를 공지해 올리는 역할을 맡았던 박주원 교도가 “교구 봉공회와 교당 봉공회 단체톡 방에 객관적으로 공지만 했다. 다른 봉사 때는 가능한 많이 참여해달라는 권유도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한 명이라도 감염자가 발생하면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라는 말에서 이번 일의 어려움이 느껴졌다. 

신경원 교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꼬박 정신없이 일을 마치고 나니 마스크, 속옷, 장화 안 양말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뉴스에서 방호복이 땀으로 범벅된 의료인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밤에 끙끙 앓았는데 신기하게도 다음 날 또 일어나서 오게 되더라”라고 하는 말 속에서 일의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일과득력이 이런 것인가. 어마어마하게 보이던 일들도 결국은 다 해내게 된다”라는 박주원 교도의 말처럼 이들은 구급대원들의 엄지척 피드백을 받으며 10일간의 급식 봉사를 훌륭하게 마무리 지었다. 다 끝내놓고 보니 이번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다음 활동에 길잡이가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김상원 회장은 주위 몇 사람에게 객관적인 평가를 부탁했고 이여일 교도는 이를 바탕으로 매뉴얼도 만들어 놨다. 

김상원 회장은 “300인분의 음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봉공회원들의 건강과 안전이었다. 간절하니 저절로 모든 것이 기도가 됐다. 약 달이면서 다림질도 챙겨야 일심이라는 대종사님 말씀처럼 봉사 내내 음식 준비와 안전,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었다”라며 활동하는 동안 ‘간절, 안전, 감사’ 세 단어가 화두로 떠나지 않았음을 전했다. 그는 매일 아침 택시를 타면서 혹시 자신으로 인해 감염시키는 일이 생길까봐 택시 기사 몰래 기도하는 마음으로 택시 번호도 다 적어뒀다. 

박주원 교도는 매일 급식 봉사자들의 점심 식사 20~30인분을 준비하고 아침 일찍 멸치 육수를 우려내고 미리 해둬야 하는 생선 손질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한 모든 교무들의 노고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이번 일을 마치면서 제일 큰 경계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네 명의 교도가 똑같은 대답을 했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든 재가출가 교도들이 한마음이 돼 합력한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무아봉공의 의미를 현장에서 확인하며 서로 돈독해진 운수의 정으로 인한 순경이라고. 

김상원 회장은 “봉공회는 늘 일만 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안타깝다. 실제로 해보면 여기서 얻는 공부가 더 크다. 이사병행은 해봐야만 안다”라고 말했다. 

[2020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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