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제 교수

[원불교신문=남성제 교수] 사회생활을 하면서 종교가 원불교라고 하면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불교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라는 것이다. 그러면 정전 교법의 총설 내용을 인용해 “신앙하는 진리는 불교와 같으나 일상 생활하는 가운데서 불법을 닦을 수 있도록 교리와 제도를 현대화한 생활불교입니다”라고 답변한다. 수많은 원불교 교도들이 이 질문을 받았을 것이고 중간 중간 표현법은 다르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생활불교’라는 것을 차이점으로 강조했을 것이다. 

대종사는 물질의 노예생활을 하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문을 열었다. 형이상학적이거나 먼 내세의 일이 아닌 현재의 일상생활을 낙원생활로 만들자는 것이 개교의 동기이다. 원불교 표어 중 하나인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과 정전 수행편의 ‘영육쌍전법’도 수도와 생활을 서로 병진하여 불법으로써 생활을 빛내고 생활 속에서 불법을 닦자는 원불교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대산종사는 “대종사께서 밝히신 법은 불법을 시대화·생활화·대중화해 부처님 은혜 속에서 영생을 잘 살도록 하는 법”이라 했다. ‘생활’이라는 단어는 교전 곳곳에서 사용되며, 전체 교전을 관통하고 있는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원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따라 일상생활에서 신앙과 수행을 잘 해나가면 모든 일을 성공시킬 수 있고 은혜와 감사의 낙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불교는 생활불교가 맞다. 그러나 생활불교라는 단어는 잘못 이해되면 종교활동의 목적을 일상생활에만 국한시켜 버릴 위험이 있다. 

우리의 목적은 단순히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낙원생활로 돌리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목적은 자신을 제도하고 시방세계 일체중생을 악도에서 선도로 제도하는 성불제중에 있다.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 영육쌍전법을 포함한 모든 원불교 교리와 제도의 최종목적은 성불제중이며 개교의 동기도 결국 성불제중을 통해 다 같이 낙원생활을 하자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성공시키고 은혜와 감사생활을 하는 것은 최종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원불교는 생활불교라는 인식이 오랫동안 확산됐고, 근본적인 목적에 대한 반조 없이 단어 그대로 이해되다 보니 그 범위가 현실 생활에만 국한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회화, 설명기도, 심고 등의 내용이,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을 하는 목적이 개개인의 생활 변화에만 치중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대종사는 “무엇이든 쉬지 않고 오랜 시일을 계속한 후에는 각각 큰 차이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 했고, 따라서 “사람의 일생에 그 방향의 선택이 제일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성불제중의 목적으로 신앙과 수행을 하는 것과 생활의 변화를 목적으로 신앙과 수행을 하는 것은 당장 겉보기에는 같은 신앙과 수행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생사를 두고 볼 때 그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차이를 나툴 것이다. 큰 것을 놓고 작은 것에 만족한다면 바른 법을 만난 보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성불제중의 서원을 가지고 나아가자는 것은 일상생활을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산종사는 “형상 있는 것을 지배하는 것은 곧 형상 없는 힘”이라 했다. 성불제중의 서원을 세우고 정진하면 그 마음을 따라 일상생활의 모든 일들도 자연히 성공될 것이다. 따라서 성불제중의 서원은 우리가 영생토록 잘 살기 위한 길이며 그 안에는 형상 있는 모든 복락이 포함되어 있다. 

결복기 교운의 시작점을 맞아 개개인의 본원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나의 신앙이, 나의 수행이, 내 몸이,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살펴보고 작은 것에 얽매여 있다면 큰 서원으로 돌리고 돌려서 영생의 복락을 얻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춘천교당

[2020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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