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은 교무

[원불교신문=임진은 교무]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상담 분야 역시 전문적인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이 꽤 어렵고 긴 편이다. 3급부터 2급, 마지막으로 1급 자격증까지 취득하기 위해서는 학위과정과는 별개로 현장에서의 긴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런 수련 과정 중 필수적인 것으로 ‘슈퍼비전(supervision)’이 있다. 이것은 초보상담자가 상담을 하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공인된 전문상담자로부터 지도·감독을 받는 것을 말한다. 내담자의 호소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적절한 상담이론을 적용하고 있는지 등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은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이런 과정은 초보상담자가 실제 경험 속에서 학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자, 내담자를 초보상담자에게만 맡기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윤리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서강대학교 상담센터에서 인턴상담원으로 수련을 시작할 때의 일이다. 첫 내담자를 배정받았고, 상담을 시작했다. 매주 1회씩 2번 정도 상담을 했는데, 3주째에 오더니 본인이 너무 바빠서 앞으로 나와의 상담에는 올 수가 없다고, 대신 센터에서 진행되는 다른 집단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으며, 내가 상담을 잘못해서 그런가 싶은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주 슈퍼비전 시간, 그 상담에 대해 지도를 받았다. 선생님이 녹취내용을 읽더니,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땠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내가 내담자와 나눴던 대화를 한 줄씩 짚어주면서, 지금 내담자가 자기 시간표를 말해주고 있는데 이 내담자는 정말로 상담시간에 맞춰서 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고. 어찌 된 일인가! 나는 당시에 분명 그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내 자괴감에 빠져서 내담자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내담자를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했고,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고, 하지 않아도 될 자책을 했다. 그 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무엇에 매여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상담 장면에는 상담자와 내담자가 함께 존재한다. 상담은 둘이서 추는 왈츠와 같다던 어느 원로상담자의 말처럼, 내담자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특성에 따라서도 내담자와의 관계나 내담자를 돕는 방식과 수준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따라서 슈퍼비전은 전문적인 역량을 기르는 시간일 뿐만 아니라, 상담 장면을 통해 드러나는 상담자의 개인적 특성에 대해 탐색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말하자면, 내면에 어떤 분별심과 주착심이 있는지, 그것이 언제 드러나는지,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상담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수행에서도 슈퍼비전이 필요하다. 이때, 나를 따뜻하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지켜봐주고, 인생 문제든 수행상 고비든 당면한 어려움에 대해 마음을 터놓고 문답·감정을 받을 수 있는 인연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일 것이다. 그 인연과 함께할 때 또한 기억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일어난 문제와 상황마다 ‘나의 어떤 특성’이 반드시 그 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안다면, 문답·감정의 시간은 지혜와 역량을 키우는 시간이자 나의 깊은 내면을 만날 수 있는 확실한 기회가 된다.

마음을 열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나는 요즘 누구에게 세밀한 문답과 감정을 받고 있는가? 나는 그에게 기꺼이 나를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문제와 상황에 영향을 주고 있는 나 자신의 분별심과 주착심에 초점을 맞출 준비가 되어 있는가?

[2020년 4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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