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사기(史記)의 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에는 위공자와 후영의 이야기가 있다. 위공자는 교만이 없고 겸손한 사람으로, 어질고 선비의 자질이 있다면 누구나 빈객으로 예우했으므로 주변 제후국에서는 빈객이 많은 위나라를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위공자는 후영이라는 늙은 문지기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후한 예물을 주려고 하지만 후영은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왔는데 문지기 생활이 어렵다고 재물을 받을 수는 없다며 거절한다. 이에 공자는 연회를 열어 직접 후영을 맞으러 간다. 그러자 후영은 마차의 상석에 앉고, 가는 길에 자신의 친구 집에 들러 한참을 얘기하며, 연회장에 도착해서도 공자보다 상석에 앉는 등 무례를 범하는데, 공자는 여전히 온화한 얼굴로 후영을 더 공손히 대했다. 

후영은 자신의 무례가 오히려 변함없이 공손한 위공자의 덕을 더 크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힌다. 이후 후영은 위공자가 이웃나라와 사이에 생긴 큰 병란을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죽었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16장에 문지기 후영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세상은 형식 시대가 가고 실력과 실행이 주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니, 후영이 한낱 문지기로되 역량과 재주가 뛰어나 그 문도 따라서 드러난 것처럼 예비교역자들 가운데 큰 실력과 큰 실행이 있는 인물이 배출되면 유일학림도 세상에 크게 드러날 것이라는 말씀이다. 후영이 위공자를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 볼 때 그는 분명 똑똑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공자가 늙고 가난하고 이름 없는 후영을 극진히 모신 것은 그가 예물에 현혹되지 않는 진실함을 가졌기 때문이며, 후영이 위공자를 따라가 그를 도와준 것도 그의 마음이 사사로움 없이 진실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진실함을 알아보고 가장 존귀하게 대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인물로 함께 드러난 것이다.

이 예화를 통해 정산종사가 말한 참으로 큰 실력과 큰 실행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을 부처로 알고 섬기는 불공법이 아닐까 싶다. 사사로움이 없는 마음으로 오로지 상대를 위하고 진실한 부처로 모시는 불공을 일상 속에서 실행해 가는 것이야말로 대종사의 법을 이어가고 정법회상을 세상에 크게 드러내는 참다운 실력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위공자가 후영을 존대한 것처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을 극진히 모시는 심법은 오로지 빈 마음이라야 가능하다. 

대산종사는 대공심(大空心)이 대공심(大公心)이라 했으니, 이 빈 마음으로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불공을 실천해 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실행일 것이며, 이 실행이 우리 저마다의 실력이 될 때 장차 이 교단과 회상이 역사 속에 크게 드러나지 않겠는가.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4월 1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