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종교로서의 원불교

- 다음 글은 원불교 전주지부 청년회에서 대각개교절 기념행사의 하나로 지난 4월 5일 전주 시민문화관에서 행해진 종교사상강연 중 건국대 김기석 교수와 원불교 변중선 법은회장의 강연요지를 간추려 본 것이다 -편집자 주

한국종교의 사명
김기석 (건국대 교수)
영육쌍전하여 마음 생활 환경 맑혀야

지금 한국의 종교는 병에 걸려 있다. 즉 현실생활은 어떻든 죽어서 천당이나 극락에 가면 될 것이 아니냐 하는 영환주의(迎歡主義)와 하늘에서 은혜가 내린다고 하는 신비주의와 자기만 바르고 남은 모두 잘못 되었다고 하는 바리새주의의 병에 걸려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치명적인 병이 기성종교의 구석구석에 파고 들어가서 썩어 있는 것이다. 정치 문화 경제 예술은 혹 썩을 수도 있지만 종교가 썩어서는 안 된다. 썩어서 안될 것이 썩으면, 즉 고등생물이 썩을수록 냄새가 더욱 심한 것이다. 종교는 이런 심정을 맑히고 환경을 맑히며 생활을 맑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마음과 몸과 생활을 떠난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마음도 맑히고 몸도 기르고 생활도 윤택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종교는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다. 그것은 곧 靈魂구제만을 주장하거나 종교 그 자체만을 위하는데 열중해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의 종교가 해야 할 사명은 이러한 종교의 병적 증상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종교의 본래 사명인 인간의 마음을 맑히고 환경을 맑혀서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즉 사회와 생활을 존중하는 성격의 종교가 뻗어 나가야 할 것이며 합리적이고 보편성을 길러서 다른 종파와 무종교인도 포용하는 누구나의 종교가 되어 한국의 곳곳을 성역화 해야 한다.
높고 깊은 진리를 체 받아 실천에 옮길 때 정신은 맑아지고 생활은 원만해져서 한반도는 성지가 될 수 있다.

생활종교로서의 원불교
변중선(원불교 법은회장) 

無時禪 無處禪으로 끊임없는 人格修練
종교인들의 生活을 상세히 검토하여 보면 그 시대 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점도 없지 않으며 지역사회에 모순된 일도 허다하나, 기성 종교이거나 신흥종교를 막론하고 그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악행을 버리고 善行을 하자는 것, 둘째 自己의 잘못을 信仰의 대상에게 참회하거나 悔改할 것을 맹세하는 것, 셋째 자기의 所望을 심고나 기도하는 것, 넷째 來生 혹은미래의 福樂을 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성조교라 할지라도 實生活面에 있어서 각 종교인의 생활태도나 그들의 행동을 검토하여 본다면 대개가 사행주의인 샤마니즘이 內抱되어 있다. 이러한 일들이 어찌 종교의 근본 사명이겠는가? 또한 宗敎는 精에도 動에도 치우치지 않는 생활종교라야 할 것이다. 만일 정(精)에만 치우친다면 죽는거와 같으며 동(動)에만 치우친다면 깨지기 쉬울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교에서는 최고 종지(宗旨)인 一圓의 진리를 一方으로는 信仰門으로 法身佛 四恩을 신앙하는 同時에 일방으로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修行門인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의 三學工夫로써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도록 공부한다. 정신수양이란 動靜間에 온전한 마음을 챙기는 공부법이요 사리연구는 天理나 인간사를 잘 알아내자는 것이요 작업취사는 천만경계를 당하여 正義와 不義를 구분해서 하자는 것이니 이 공부를 한꺼번에 하는 방법으로 無時禪 無處禪의 공부법이 있다. 이 공부는 어느 곳에서나 어느 때나 禪을 한다는 말이니 禪이란 자기의 정신을 그일 그일에 집중시켜서 活用한다는 의미인데 例를 들면 부부는 부부의 道理를, 禪하고 세상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사를 禪하여 그일 그일에 專一하여야 참 종교인이요 사실적 宗敎人일 것이다.
흔히 참회나 서원이나 心告나 기도는 일정한 신앙의 대상을 모셔 논 장소에서만 행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으나 圓佛敎에서는 處處佛像 事事佛供으로 盡大地를 다 한 道場으로 알아서 一草一木도 다 똑같은 佛像으로 보고 무슨 일이든지 불공(佛供) 드리는 心境으로 생활하며 그일 그일에 드리는 당처불공(當處佛供)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事實的 宗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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