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각개교절눌함 大覺開敎節吶喊

철학자 도올 김용옥
철학자 도올 김용옥

원불교란 무엇인가? 
이 어려운 질문에 쉽게 대답하려면 우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난하다. 법성포를 서북방으로 바라보는 구수산(九岫山) 아랫자락 길룡리에서 태어나서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자라난 한 청년의 대각으로 시작된 종교운동. 

“청년”이라는 말에 좀 섬뜩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소태산 박중빈이 득도했을 때가 1916년 4월 28일이므로 만 나이가 25세도 채 되지 않는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이 뭘 깨달았다 한들 얼마나 대단한 것을 깨달았겠는가? 원불교 신자들에게는 매우 불경스럽게 들릴 이러한 질문이 머리에 맴돌지 않는 한, 소태산의 정신세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상식이요, 소신이다. “대각”이라는 말은 “크게 깨달았다”는 뜻인데, 과연 무엇을 크게 깨달았다는 말인가? 당신은 과연 이 나의 말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가? 큰 깨달음이란 큰 깨달음을 얻은 자에게만이 이감(移感)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즈음 원불교 잘 돌아가고 있소? 앞날이 훤합니까? 전도가 창창합니까? 도대체 원불교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미래방향을 예견할 수 있겠소? 이런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재 원불교의 사람들이 소태산 박중빈의 대각의 외침에 부응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는 것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런 것을 따져보려면 우선 소태산의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25세의 시골청년은 과연 무엇을 깨달았는가?

생각해보라! 옛날 영광 백수면 길룡리는 매우 편벽한 곳이어서 제대로 된 서당도 없었다. 그가 7세 때부터 화창한 하늘의 푸름과 우연히 이는 바람과 구름에 의문이 일었고, 끊임없이 삼라만상에 대한 경외감과 그 실상에 대한 회의가 일어, 스승을 구하고자 했어도 구할 길이 없었고, 산신령이나 도사를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요, 형편상 만권시서를 독파할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회의와 갈망과 절망 속에 그의 우주론적·인간론적 질문은 깊어만 갔고, 그러던 중 1916년 음 3월 26일 이른 새벽, 홀연히 정신이 쇄락하여 대각의 경지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라는 것

박중빈의 대각에는 명백한 특징이 있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과 홀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식의 도움을 크게 받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대각 자체가 개념적 추론의 결론이 아니라는 것이요, 홀로 깨달았다는 것은 영광 산천의 흙내음새가 빚어낸 오리지날한 단독자의 포효라는 것이다. 그 포효는 신단수 아래서 태어난 단군의 포효와 동시적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불교”를 불교의 변양으로 생각하거나, 생활화된 현대불교의 일종으로 간주하는데, 내가 단연코 말하건대,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다. 박중빈이 스스로 “내가 스승의 지도 없이 도를 얻었으나, 득도의 경로를 돌아본다면 과거 부처님의 행적과 말씀에 부합되는 바 많으므로 나의 연원을 부처님께 정하노라”라고 언명했다 해서, 원불교가 불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불교는 불의 가르침일 뿐이요, 이때 불이란 “깨우침”의 별명일 뿐이다. 박중빈은 어떠한 종교단체를 개창하기 위하여 깨달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존재 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의문 때문에 견딜 수 없어, 우주와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의 실상을 알고파서 몸부림쳤을 뿐이다. 만유가 한 체성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에도 그는 그의 깨우침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승가를 조직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종교에 있지 않았다.

그의 각(覺)이 도달한 곳은 주변 마을사람들의 삶의 개선이었다. 그는 말로써가 아니라 행동으로써 그의 각(覺)을 보여주었다. 예수는 선지자는 고향에서 배척을 받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박중빈은 고향에서 깨달았고 고향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삶의 운동을 펼쳤다. 그것은 종단이 아닌 생활조합이었고, 바다를 막아 3만여 평의 농토를 만드는 방언공사였다. 이러한 개척공사를 무에서 창출해낼 수 있는 정신적 기초가 바로 그의 각(覺)이었다.

예수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 우리는 4개의 예수전기자료인 복음서를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나 마태·마가·누가·요한은 한 개인사가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속한 공동체, 즉 초기 크리스천공동체를 대변한다. 마태복음은 마태공동체가 이해한 예수의 모습이고, 마가복음은 마가공동체가 이해한 예수의 모습이다. 이들 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명백한 공통점은 예수가 이미 그리스도화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화”라는 것은 예수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즉 재림의 주인공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라는 희랍어의 히브리말 표현이 메시아고, 그것은 곧 구세주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것은 유대인들에게는 다윗왕국의 재건을 의미한다. 예수는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다윗 혈통의 사람으로서 다윗의 출생지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것으로 시작됐다. 그의 십자가의 형벌사건은 부활사건으로 둔갑되었다. 그리고 부활은 승천을, 승천은 재림을, 재림은 이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신학화 되었다.

복음서작가들에게 예수는 이적을 행하는 메시아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인류를 구원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서 보여준 행적을 그리는 데만 그들의 관심이 쏠려있었기 때문에 인간 예수는 그 배면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복음서에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는 결코 고향에서 배척을 받은 사람이 아니다. 그는 갈릴리 민중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기자들이 그가 배척을 받은 것처럼 쓰는 것은 예수를 메시아로서 보통 사람들과 분리시켜야만 했기에 그렇게 조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대교회의 메시아적 관심(케리그마) 때문에 예수라는 역사성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박중빈의 경우는, 최수운의 『동경대전』도 같은 상황이지만, 예수와 복음서기자가 일치하는 위대한 사실적 측면이 있다. 즉 박중빈의 복음서를 박중빈 자신이 쓴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불교전서』의 제일 앞머리에 위치한 『정전(正典)』이라는 것이다. 『정전』은 여타 『대종경』이나 법어와는 격을 달리하는 것이다. 원불교의 핵은 바로 이 『정전』에 다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박중빈은 1943년 열반에 들기 석 달 전에 이 『정전』(당시 『불교정전』)을 친감하고 발행까지 완수한다. “나의 일생포부와 경륜이 그 대요는 이 한 권에 거의 표현되어 있다.”

이전에 나는 정산 종사를 매우 좋아했다. 아무래도 학문의 정도를 밟아온 나로서는 송규 선생의 높은 학식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요즈음 정산화 된 소태산의 언어를 과히 좋아하지 않는다. 소태산과 정산의 관계는 예수와 바울의 관계와 유사한 점이 있다. 바울은 종말론적 관심 속에서 예수를 크게 왜곡했다. 바울의 예수는 갈릴리 흙바람 속의 예수가 아닌 허구적 메시아이다. 그러나 정산은 소태산을 직접 만났고 그의 가르침을 호말도 왜곡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태산의 투박스러움이 정산의 언어 속에서 세련화 되고 고차원화된 측면이 있다. 정산을 걷어내고 박중빈을 만날 길이 있는가? 이러한 문제의식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전적이 바로 초기 교서들이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진실로 인간 박중빈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 소박한 문장이 바로 『조선불교혁신론』이다. 그가 대각한 후 4년 만에(3·1독립만세혁명 1년 후) 변산 월명암에서 그 초안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나도 인간 박중빈을 느끼기 위해 월명암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원불교 교도라면 누구든지 교전 첫머리에 있는 “일원상의 진리”를 줄줄 외운다. 흠잡을 데 없는 언어이지만, 그것을 아무리 줄줄 외운다 한들 레토릭의 수준에 머물 뿐,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본시 완벽한 언어는 무의미한 언어다. 그것은 인간 박중빈의 언어라고 말하기 힘들다. 그러나 『조선불교혁신론』에는 박중빈의 일상적 언어가 소박하게 실려있다. 한용운·백용성·백학명·박한영·송경허와 같은 이들의 논의는 불교교단 내의 유신임에 반하여, 박중빈의 논의는 현실적·역사적 불교 그 자체를 뛰어넘는 혁신을 말하고 있다.
그는 우선 외방의 불교를 조선의 불교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한다. 이에 박중빈은 매우 래디칼한 발언을 한다. 외방의 불교를 구성한 모든 언어, 즉 불교교리의 숙어, 명사를 단절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인도말, 고전 중국어로 결구된 언어적 구성물을 파괴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재래의 불교언어에도 오염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의 단절은 가장 본원적인 단절이다. 그래서 내가 원불교는 불교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것은 길룡리의 풍진일지언정, 부다가야 보리수 나무 밑의 명상이 아닌 것이다.
 

사은이야말로 진정한 박중빈의 깨달음의 전체 
기존의 어떠한 종교적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순결한 우리 삶의 지고한 언어라는 생각을 굳혀가게 됐다


박중빈은 등상불 숭배를 불성 일원상으로 바꿔야 하는 당위성을 농가에서 참새를 못 오게 하기 위하여 세워 놓는 인형 허수아비에 비유한다. 참새들이 며칠은 오지 않을지 모르나 곧 그것이 허수아비임을 깨닫고 올라앉아 똥을 싸며 유희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무식한 새도 허수아비를 알아보는데, 최령한 인간이 인형 등상불을 2천 년 동안이나 모셔왔으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냐는 것이다.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부활대망공동체를 만든 바울의 거짓말을 2천 년 동안 모셔온 서양종교사에는 박중빈류의 근원적 혁신은 그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다. 나는 일원상의 진리를 “참새똥”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원광대 6년 재학의 최대결실이었다. 참새똥은 모든 종교의 이념과 심볼리즘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흔히 원불교를 진리의 종교라 말하고, 사실의 종교라 말하고, 일원상의 진리를 들어 그것을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일원상의 레토릭만을 들으면 공허할 뿐이다. 나는 박중빈의 대각의 핵심이 일원상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박중빈의 언어의 핵심은 그가 인간을 바라보는 눈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각이 바로 사은(四恩)이다. 처음에 나는 사은을 매우 촌스러운 언어라고 생각했다. 뭔가 그랜드한 느낌을 주는 난해성 같은 것을 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되는 듯하면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은이야말로 진정한 박중빈의 깨달음의 전체, 기존의 어떠한 종교적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순결한 우리 삶의 지고한 언어라는 생각을 굳혀가게 됐다. 사은은 인간을 “은(恩)의 존재”로 규정한다. 은은 관계를 의미한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 속에서 은혜를 입었다는 사태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 은의 근원으로서 천지, 부모, 동포, 법률 4항목을 제시한다.

천지는 곧 부모이며, 부모는 곧 천지이다. 천과 지간의 교합에 의하여 생성되는 모든 존재가 나의 동포이다. 그리고 이 동포들이 살아가는 문명의 방식이 법률이다. 천지가 없이 나는 태어날 수 없었다. 부모가 없이 나는 태어날 수 없었고 성장할 수 없었다. 동포가 없이 나는 생존할 수 없었다. 법률(조금 난해한 개념이다)이 없이 나는 생활의 질서와 이상적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미 천지은으로 규정된 나는 천지에 보은을 해야만 한다. 부모, 동포, 법률에 대한 보은도 마찬가지다. 원불교가 진정으로 사은을 자각한다면 보은의 행동을 취해야만 한다. 그것은 곧 원불교는 원불교 교리 자체 내에 머물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불교는 원불교를 벗어나야 한다. 소태산-정산-대산 삼대에 걸친 눈부신 축적이 위대했던 것은 그들이 교리를 정교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흐름을 선도하는 비전을 제시했고 사회적 울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2016년 5월 17일 원불교개교100주년기념 영광국제마음훈련원 특별강연.
2016년 5월 17일 원불교개교100주년기념 영광국제마음훈련원 특별강연.

원불교 잘 가고 있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리더십이 너무 빈곤하고 나른하오.” 원불교 관계자들에게 실태를 물어보면 미국과 러시아에서 아주 잘하고 있고 제2세기의 꽃이 만발하려 하고 있다고 장황설을 늘어놓는다. 뿌리가 썩어가는 나무가 꽃도 화려하게 만개하기를 좋아한다. 뿌리가 실한 나무는 해거리를 하면서 먼 미래에 대비한다. 나는 원불교가 종교를 뛰어넘는, 이적과 신비를 거부하는 위대한 생명의 종교라고 확신하지만 박중빈의 외침에 너무도 못 미치는 현황이라고 안타까운 느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쉽게 개선될 수 있는 것조차 손 못 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소성대(以小成大),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초심을 회복해야 할 때가 아닐까? 지금도 원불교 하면, 하루종일 고추밭 이랑에서 호미질을 하며 아픈 허리를 어루만지던 부안 원광선원 가타원·진타원님의 걸쭉한 목소리가 일원상 부처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메아리친다.

[2021년 4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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