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

 

최형숙 인트리 대표(좌)와 함아연 활동가.
최형숙 인트리 대표(좌)와 함아연 활동가.

[원불교신문=이은선 기자] “35살에 미혼모가 됐다. 아이가 4살 때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원무과 직원이 병원비가 많이 나올 테니 보증인을 세우라고 했다. 병원 매뉴얼에 따른 것이냐 따져 물으니 병원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곳을 안내해 줬다.”

당시 경제적으로 안정이 돼 있었지만 아이와 엄마, 둘이 산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가 돼야 했던 최형숙 대표(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이야기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혼모단체를 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과감한 도전장을 냈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냉혹한 현실
2013년 설립,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 인트리(이하 인트리)는 미혼모들이 뜻을 모은 비영리단체다. 최형숙 대표와 운영위원 8명, 활동가 2명 등 모두 11명이 인트리를 구성하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미혼모 경험이 있거나 당사자들이다. 인트리의 출발점에는 최 대표가 미혼모라서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서려 있다.

10여 년 전 그가 겪은 사회적 편견과 냉혹함은 그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평범하고 싶었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었던 한 아이의 엄마에서 미혼모단체의 대표가 된 것. 그에게 불편한 시선을 보낸 건 앞 이야기에 나오는 병원 직원뿐만이 아니었다. 미혼모를 주제로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운영하던 미용실에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고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최 대표는 “미래에는 지금보다 정의로운 사회였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공정하고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트리를 설립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형태 가족 인정해 줘야
인트리란 이름은 사람 ‘인(人)’자에 나무 ‘트리(tree)’를 쓴다. ‘한 여성이 한 아이로 인해서 큰 나무로 성장하고 또 한 아이를 엄마로서 큰 나무로 성장시키자’라는 뜻이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협회’라는 문구와 함께 인트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트리의 주요 활동은 미혼모·자녀·가족 교육, 사회적 편견·차별 인식 개선, 상담 지원, 권익 신장을 위한 각종 법률제도 개선 등이다. 이 중 가장 핵심은 편견과 차별 등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 미혼모가정을 포함한 한부모가정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변화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최 대표는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을 인정해 주는 일이다”며 “‘내 아이를 내가 키울 테니 남들하고 똑같이만 봐줬으면 좋겠다’란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미혼모라고 해서 취업 전선에서 밀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자신의 의지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어떤 가족형태에서 태어나든 차별받지 않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익명출산제를 논의해 볼 수 있다

익명출산제 찬반 논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미혼모와 그의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은 심각하다. 일례로 임신 진단을 내려준 병원에서는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낙태’ 이야기를 먼저 꺼내기도 한다. ‘미혼모니까 낙태를 할 것이다’는 편견이 낳은 결과다. 미혼모인 함아연 활동가는 “병원에서 태아의 심장 소리를 들은 뒤였다. 의사가 내 생각도 묻지 않고 낙태 가능한 곳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다”며 황당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함 활동가는 출산을 결심했고, 현재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다. 

최근 찬반 논란이 일고 있는 익명출산제 역시 이런 사회적 편견과 맞물려 있다. 출산 과정에서 임산부의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므로써 의료기관에서의 출산을 꺼리는 산모를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제도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출생신고 누락이나 유기 문제 등의 대안으로 꼽히는 반면 ‘미혼모가 임신하면 몰래 아이를 낳아도 된다’는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 익명출산제가 익명입양을 전제함으로써 입양을 장려하게 될 것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최 대표는 “입양을 보낼 수는 있지만 아이는 자신이 누구에게서 태어났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익명출산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의지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어떠한 가족형태에서 태어나든 차별받지 않고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진 사회가 되면 익명출산제를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본다.
 

소녀노래하다 뮤지컬.
소녀노래하다 뮤지컬.

인식 개선을 위한 문화콘텐츠 제작
인트리의 인식 개선 활동은 문화콘텐츠 제작에 집중돼있다. 기업이나 국가의 공모사업에 지원해서 선정되면 미혼모를 주제로 한 뮤지컬, 연극, 낭독회, 유튜브 영상 콘텐츠 등을 제작한다. 뮤지컬 ‘소녀, 노래하다’와 연극 ‘특별한 여자들의 특별한 이야기’, 15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초보 엄마와 10살 딸을 키우고 있는 미혼모의 만남을 담은 영상 등 기록물을 만들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최 대표는 “앞으로는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은 웹드라마도 제작하고 싶다. 미혼모들이 아이와 얼마나 치열하게 살고 있는지, 이들이 왜 차별을 받지 말아야 하는지 등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며 “미혼모들이 삶의 영역을 넓혀가다 보면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차별이 없는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참 좋겠다. 결혼해서 미혼모를 탈피했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도 진행형이야(여전히 엄마가 미혼모라는 꼬리표가 있어).” 어느 날 알게 된 아이의 속마음에 엄마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그는 절망보단 세상의 변화를 꿈꾸기로 했다. 엄마들이 나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주면,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국내 미혼모는 22,065명. 엄마들의 용기와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2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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