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20년만에 대학시절 교무님을 만났다. “원숙회(원불교 숙명여대 교우회) 애들은 잘 지내냐, 서대연(서울교구 대학생 연합회) 애들과는 연락하냐.” 나는 풍문으로 들은 취업, 결혼, 이민 소식 등등을 전했다. 교무님은 또 물었다. “취재 다니면서 서대연 애들은 좀 보남?” “아아~, 아니요.” 그러고보니 다 어디갔지? 

원숙회 99학번인 나는 서대연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다. 1999년 5월 서대연 신입생 엠티, 선배들은 30명도 넘는 새내기들을 먹이느라 밤새 파전을 부쳤다. 농촌보은활동(농활)으로 군서교당 가는 45인승 관광버스가 그득 찼다. 매주 소년원 법회에 갔고, 봄가을 보은장터 야경을 섰으며, 겨울에는 신입생미리배움터, 알음알이도 했다. 월 1회 횃불법회엔 늘 수십 명이 모였다. 거한 뒷풀이 마지막엔 둥그렇게 서서 팔을 엇갈려 잡은 채 ‘운수의 정’을 허밍했다. 제법 엄숙했고 진지한 의식이었다. 

나의 서대연은 서울 10여 개 교우회의 92~02학번이다. 서로에겐 당연하고 하찮은 존재였지만, 사실 우리는 미래가 촉망되는 동량이었다. 인서울 4년제 대학에, 아닌 게 아니라 다들 착실했다. 졸업 후 전문직이 되거나 괜찮은 회사에 입사했다. 그리고 이제 40~50대가 된 서대연 출신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IMF 전후의 X세대, 이들은 취직하고 결혼하고 집사고 승진하느라 종교와 멀어졌다. 내가 십수 년째 원불교 기자를 하면서 이들을 만날 수 없었던 이유다. 허나 이제 곧 이들에게 여유라는 게 생긴다. 모든 종교가 원하는, 현직이면서 연봉도 영향력도 높으며 숨통도 좀 트이는 바로 그 시기다. 바로 그때, 주변을 둘러볼 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불러올 것인가.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준비한다면, 잠자는 서대연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대학생교화를 외쳐온 이유는, 원불교 대학생의 ‘미래가치’때문이다. 그때 교단이 공들였던 그 미래가치가 지금 우리 가까이 잠들어있는 것이다. 

교무님과의 대화 끝에 내가 말했다. “누가 나 1년만 먹고 살게 해주면, 서대연 좀 캐러 다니고 싶다”고. 

말 붙여볼 선후배가 적어도 50명, 일주일에 1명씩만 도전해도 한 단은 만들겠지. 원불교에 기대하는 바를 조사해 서대연 출신들의 매뉴얼도 만들고, 총동문회도 만들어야지. 그 누구라도, 금맥 캐는 광부로 키워내야한다.

새해, 원불교가 서둘러 해야할 일을 떠올리니 서대연 흥신소다. 대학생교화가 불타오르던 그 시절처럼, 흐름은 분명히 다시 한번 온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2022년 12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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